'장기 복무' 빌미로..이예람 중사 근무 부대서 또 성추행
가해자 괴롭힘 행위 연루돼 피해자 입건되기도
공군 "심려 끼쳐 사과..엄중히 처리할 것"
성폭력 피해자인 고 이예람 중사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부대인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15비)에서 또다시 남성 군인이 여성 군인을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는 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5비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하사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며 제보 내용을 공개했다. 군인권센터 설명을 들어보면, ㄱ(44·남) 준위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피해자인 ㄴ하사의 거부에도 신체접촉을 하는 등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랑한다”, “집에 보내기 싫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ㄱ준위는 “나만 믿으면 장기(장기복무)가 될 수 있다”고 발언하며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히면 통상적인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고 군인권센터는 주장했다.
결국 ㄴ하사는 지난 4월14일 공군 양성평등센터에 ㄱ준위를 신고했다. ㄱ준위는 다음날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군사경찰에 입건됐고 같은달 26일 구속됐다. 피해자는 신고 다음날에도 가해자가 출근을 하는 등 피해자·가해자 분리 조치가 즉각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군은 신고 사흘 뒤인 같은달 18일 ㄱ준위를 다른 부대로 파견 조처했다. ㄱ준위가 같은달 21∼22일에도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모두 27차례에 걸쳐 “내가 죽으면 너도 힘들어질 것”,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피해자를 협박하고 회유했다고 군인권센터는 전했다.
ㄴ하사는 ㄱ준위의 구속으로 사건이 일단락됐다고 생각했지만, 군경찰 조사 과정에서 가해자의 괴롭힘 행각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4월 ㄱ준위는 코로나19에 확진된 군인 ㄷ씨의 집에 ㄴ하사를 데리고 가 ㄷ씨에게 입을 맞추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강요했다. ㄴ 하사는 계속 거부했지만, ㄱ준위의 강압에 못 이겨 ㄷ씨가 마시던 음료수를 마셨고 3일 뒤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성추행 수사를 하던 군사 경찰이 ㄷ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던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인지했고, 그의 고소(주거침입· 성추행 혐의 등)에 따라 ㄱ준위와 ㄴ하사를 모두 입건했다. ㄴ하사는 격리 숙소에 가자는 ㄱ준위의 제안을 40분간 설득하며 거부했지만, 강요에 못 이겨 동행했다는 입장이다. ㄴ하사는 성추행 혐의는 벗었지만, 군 경찰은 그를 주거침입과 근무기피 목적 상해 혐의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부대 선임이 ㄴ하사에게 2차 가해도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사실을 호소한 ㄹ원사가 이를 가해자에게 알려주고, 피해자를 험담했다고 군에 신고했다. 피해자 쪽은 신고 이후 명예훼손이나 2차 가해는 분리조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하고 청원휴가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군인권센터는 “공군 15비는 20비(제20전투비행단)에서 성추행을 겪었던 고 이예람 중사가 지난해 전입해 온 부대로, 전입 뒤 2차 피해를 겪은 곳”이라며 “피해자의 신고 후 상황을 보면 과연 공군이 불과 1년 전 성추행 피해로 인한 사망사건을 겪고 특검 수사까지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공군은 “이번 성추행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공군은 본 사건을 법과 규정에 따라서 엄중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즉각 피해자·가해자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에 “해당 부대에서는 피해자의 신고 즉시 가해자에게 2차 피해에 대한 고지를 했 다. 이후 4월 16~17일에는 피해자가 휴가를 나갔고 18일에는 해당 가해자를 다른 부대로 파견 조치를 했다”며 “다만 26일 가해자 구속 전 가해자가 피해자가 있던 부대에 방문했는지 등의 동선은 향후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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