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 폭 50%까지 늘린 정부, 가계 부담 낮출까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에 붙는 세금을 50%까지 깎아줄 수 있는 내용의 법안이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휘발유의 경우 세금이 ℓ당 최대 148원이 추가로 내려갈 여지가 생겼다.
그러나 전례에 비춰볼 때 정부가 세금을 낮춰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소비가 늘어나 결국 기름값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유류세 인하보다 독일의 ‘9유로(약 1만2000원) 티켓’처럼 대중교통을 활성화하는 방안 등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날 ‘유류세 탄력세율’ 조정 범위를 현행 30%에서 50%로 확대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정부는 고유가 대응 카드를 추가로 확보하게 됐다. 정부는 최근 유가 상황과 세수 감소를 고려할 때 당장 유류세 인하 폭이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필요한 경우, 유류세 50% 탄력세율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유류세는 교통·에너지·환경세(교통세), 교육세, 주행세와 판매가격에 적용되는 부가가치세 등으로 구성됐다. 교육세는 교통세의 15%, 주행세는 교통세의 26%로 교통세가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교육세와 주행세까지 모두 바뀌는 구조다.
당초 정부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시행하기 전 휘발유 기준으로 ℓ당 529원의 교통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유럽의 제재로 최근 유가가 더 오르자 정부는 교통세율을 법정 하한서인 ℓ당 475원로 조정했다. 이에 따라 유류세를 최대폭(50%)으로 인하하면 실질적으로 세금은 세율 조정 전 대비 55%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교통세가 낮아지면서 교육세와 주행세도 줄어들어 당초 ℓ당 820원이었던 유류세는 368원까지 452원이 떨어진다. 만약 운전자가 월 평균 100ℓ 가량 휘발유를 넣는다면 유류세 인하로만 4만5200원을 아끼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유류세 인하 폭을 확대하더라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가격이 높으면 소비가 줄어드는데, 유류세 인하로 가격을 낮춰줘서 소비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대한석유협회 집계를 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보통휘발유 값이 10년 만에 ℓ당 2000원을 돌파한 지난 3월 기준, 소비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2% 감소했다. 4월에도 보통휘발유 소비량은 21.4% 줄었다.
그러나 5월에 유류세 인하 폭이 20%에서 30%로 확대된 이후 휘발유 소비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9% 늘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추면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연재해 등으로 일시적으로 공급난을 겪을 때에는 ‘유류세 인하’ 카드가 통하겠지만 지금은 구조적으로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나는 상황인 만큼 단기적인 효과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수요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실린다. 독일은 1개월에 9유로만 내면 버스, 열차 등 지역 내 모든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9유로 티켓’ 사업을 지난 6월부터 3개월간 시행에 나섰다. 이는 천정부지로 치솟던 소비자물가 상승 폭을 낮추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페인도 9월부터 물가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 9월부터 연말까지 일부 열차의 왕복권을 무료로 발급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대중교통 활성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유류세 인하는 대형차 등 휘발유 소비가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더 돌아가는 문제점(역진성)이 발생할 수 있다”며 “독일 9유로 티켓처럼 대중교통 정책을 더 과감하게 펼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대중교통 여건이 열악한 지방에 관련 인프라 확충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중교통 이용 거리에 따라 마일리지와 교통비를 지원하는 알뜰교통카드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알뜰교통카드 이용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29만명에 그쳤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은 “알뜰교통카드 이용 후 대중교통 횟수가 14% 가량 늘어났다”며 “고유가 시대에 교통비 절감을 위해 이 혜택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고유가 충격에 노출된 화물운송 사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박귀란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전략조직국장은 “대형화물차는 월 매출의 70~80%가 원가 비용으로 나간다”며 “유류세가 인하된 만큼 연동돼 떨어지는 유가보조금 제도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과해” “손가락질 말라” 고성·삿대질 난무한 대통령실 국정감사 [국회풍경]
- 수능 격려 도중 실신한 신경호 강원교육감…교육청·전교조 원인 놓고 공방
- [스경X이슈] ‘나는 솔로’ 23기 정숙, 하다하다 범죄전과자까지 출연…검증 하긴 하나?
- “이러다 다 죽어요” 외치는 이정재···예고편으로 엿본 ‘오겜’ 시즌2
- [단독] ‘김건희 일가 특혜 의혹’ 일었던 양평고속도로 용역 업체도 관급 공사 수주↑
- 유승민 “윤 대통령 부부, 국민 앞에 나와 잘못 참회하고 사과해야”
- “부끄럽고 참담” “또 녹취 튼다 한다”···‘대통령 육성’ 공개에 위기감 고조되는 여당
- 김용민 “임기 단축 개헌하면 내년 5월 끝···탄핵보다 더 빨라”
- [한국갤럽]윤 대통령, 역대 최저 19% 지지율…TK선 18% ‘지지층 붕괴’
- 민주당, 대통령 관저 ‘호화 스크린골프장’ 설치 의혹 제기… 경호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