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평가” vs “문제없다”… ‘알츠하이머’ 논문 조작 논란에 엇갈린 평가

변지희 기자 2022. 8. 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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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조작 논란에 ‘아밀로이드 가설’ 휘청
“논문 조작은 개인 일탈, 큰 영향 없어”
신약 개발사들, 복합 기전 채택
전 세계 170개 임상, 143개 약제 개발 중
하반기 임상 결과에 따라 아밀로이드 가설 흔들릴 수도
정상 뇌(왼쪽)보다 쭈그러든 치매 환자의 뇌./알츠하이머 어소시에이션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 원인을 밝힌 ‘아밀로이드 가설’과 관련한 논문 하나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치매약을 개발하는 국내·외 바이오벤처에 파장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당 논문에 대해 제기된 의혹에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다고 봤다. 아밀로이드를 제거해 치매를 치료한다는 신약들이 번번이 실패하면서, 해당 가설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던 터였다.

다만 업계는 해당 연구가 조작됐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알츠하이머 치매 연구의 근간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알츠하이머의 발병 원인을 두고 여러 가설이 있고, 또 최근 진행되고 있는 신약 연구는 아밀로이드만 공략하지 않기 때문에 개발 전략에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업체의 주장이다.

◇ 알츠하이머 연구 이끈 미 논문 조작 의혹

알츠하이머 치매는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학계에서는 ‘아밀로이드 가설’이 오랫동안 신봉돼 왔다.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이고 뇌 신경세포가 파괴, 뇌 크기가 줄어들면서 발생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런데 최근 지난 16년 동안 알츠하이머 발병 원리로 알려졌던 주요 연구 중 하나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이 제기된 논문은 지난 2006년 미국 미네소타대학 연구팀이 세계적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이다.

이 연구는 건강한 어린 쥐에게 특정 단백질, Aβ*56 (아밀로이드 베타 스타 56)를 투약했더니 기억 손상 인지 기능 저하가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이 논문 발표 이후 알츠하이머 발병 원리로 ‘아밀로이드 가설’이라는 게 생겼다.

아밀로이드 베타(Aβ)는 뇌 속에 있는 평범한 단백질이지만 신경세포 표면에 오랫동안 쌓이면 인지 기능을 떨어뜨려 알츠하이머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2270건 인용되면서 지금까지 나온 알츠하이머 논문 중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중 하나로도 꼽혔다.

이 논문을 토대로 제약 바이오 기업들은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8월 매튜 슈래그 미 밴더빌트대 의대 교수가 이 논문의 조작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올해 37살의 의사과학자인 슈래그 교수는 지난해 미국 바이오벤처인 카사바 사이언스가 개발한 알츠하이머 신약 후보물질의 성분과 안전성, 효능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해당 논문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찾아냈다.

슈래그 교수는 이 논문이 알츠하이머 진행 과정에서 단백질 역할을 부풀리려고 이미지를 조작했다고 봤다. 이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가 자체적으로 전문가를 구성해 슈래그 교수의 주장을 분석했고, 약 6개월에 걸친 조사 결과를 지난달 21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이미지들에 대해 “충격적으로 노골적으로 보인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네이처도 조사에 착수했다.

더욱이 최근 아밀로이드 제거에 초점을 맞춘 치매 치료제 신약들은 줄줄이 개발에 실패하며 아밀로이드 가설 회의론이 나오고 있었다. 예를 들어 바이오젠이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기전으로 개발한 알츠하이머 신약 ‘아두카누맙’은 지난해 FDA에서 승인을 받았지만 유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밀로이드와 치매의 연관성을 과대평가했다’는 얘기가 학계에서도 나온다.

제프리 커밍스(Jeffrey Cummings) 교수가 자료에 실린 현재 임상중인 알츠하이머 치료제 관련 그래픽.

◇ “개인의 일탈…가설에 아무 영향 없을 것”

하지만 전문가들은 알츠하이머 치매가 한 가지 원인으로만 설명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번 논문 조작 의혹으로 아밀로이드 베타와 치매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김상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논문 조작은)개인의 일탈일 뿐 아밀로이드 가설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라며 “과학적으로는 별 문제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업계에서도 아밀로이드 베타와 치매의 연관성을 부정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국내 바이오업체 관계자는 “(해당 논문 외에도) 아밀로이드가 인지기능과 관련 있다는 연구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번 조작 논란에서 문제가 된 건 ‘Aβ*56′이지만 현재 개발 중인 대부분의 치매 신약들은 ‘42′를 표적하고 있어 연관성이 낮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개발 중인 치료제들은 아밀로이드 베타 외에도 다양한 작용기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국내 바이오벤처 관계자는 “알츠하이머의 발병 원인으로는 아밀로이드 베타 외에도 타우단백질, 면역세포와 관련된 신경염증, 혈관 등 여러 가설이 있다”라며 “이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치료제 개발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임상을 시작하는 개발사들 중에서 아밀로이드만 타겟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도 말했다.

국내 바이오기업 중에선 젬백스, 차바이오텍, 아리바이오, 디앤디파마텍, 메디프론 등이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젬백스는 이번 논란과 자사의 후보물질 ‘GV1001′의 작용기전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젬백스 관계자는 “아밀로이드 베타는 알츠하이머의 ‘결과물’일 뿐이다”라며 “(GV1001의 기반이 되는) 텔로머라제는 세포 사멸을 방지하고 DNA가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바이오텍은 “차바이오텍이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56(Aβ*56)을 표적하는 치료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이번 논란으로 같은 기전으로 개발 중인 글로벌 빅파마들의 치매 신약 임상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올 하반기에 릴리의 ‘도나네맙’, 에자이·바이오젠의 ‘레카네맙’, 로슈의 ‘간테네루맙’에 대한 임상시험의 주요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 임상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아밀로이드 가설은 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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