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산행은 인생의 축소판

김상일 무주산악회 2022. 8. 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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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곰배령에 섰다.

일명 깔딱고개로 불리는 거의 직벽에 가까운 아주 가파른 곳이 이어지는 곳을 올라가는 오르막 산행은 숨이 차고 땀이 비 오듯 흐르게 마련이다. 등짝이 흠뻑 젖으며 호흡은 거칠어지고 심장은 쿵쾅쿵쾅 뛴다.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한다. 숨소리는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깔딱깔딱한다. 심장 박동에서 나 자신이 살아 있는 생물체임을 실감한다. 오염에 찌든 공기로 쌓였던 노폐물이 땀에 섞여 온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산행 중간에 누구나 한 번쯤은 힘든 산행을 포기하려는 마음이 불쑥 솟구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산행은 고행길을 스스로 선택한 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다. 산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평탄한 길이 무작정 이어진다면 산행의 의미와 재미는 반감된다. 평탄하기만 한 인생은 맹물같이 싱거울 뿐이다. 우연, 곡절, 이런저런 사연과 부딪치며 헤쳐 가는 게 인생이다. 고비마다 고통이나 어려움을 극복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가운데 인생의 내용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등산은 정상을 정복해서 승리와 쾌감을 만끽하기보다는 땀내 나는 한 발짝을 움직이면서 자기를 이겨가는 과정이 되어야 더욱 의미 있으리라.

사람들은 돈을 들여 고통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돈을 써서 쾌락과 행복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돈은 돈대로 쓰고 고통은 고통대로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과정을 통해 인내, 끈기, 도전, 집념, 겸손 그리고 깊은 사고력까지 얻는 것이 진정한 산행이다. 그렇다. 산은 호강하러 가는 게 아니라 고생하러 가는 것이다. 땀 흘린 만큼 인내력이 길러지고 체력도 단련되며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맛보고 성취감을 얻기 위한 고행길이다. 산은 인생 살아가는 법을 진솔하게 가르치는 스승이다. 산은 도전하는 자 누구에게나 건강한 삶을 누리게 한다.

오르막 산행은 이제부터 없을 듯 평탄하고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진다. 산길 길섶에는 갓 피어난 어린 풀꽃의 향기, 키가 쑥쑥 자라나는 나무의 새순 크는 소리, 그리고 땅속에서 물을 찾아 나무뿌리가 힘차게 뻗어가며 흙 헤치는 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숲으로 들어갈수록 형용할 수 없는 싱그러운 기운이 몰려온다. 바람 소리, 꽃잎이 피는 소리, 잎이 떨어지는 소리, 다람쥐가 낙엽을 밝는 소리, 자연이 주고받는 재잘거림에 나를 맡기면 불현듯 자연의 생명체와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오르는 기운을 피부로 느끼는 듯하다.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온갖 생물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생의 기쁨으로 넘치고 있음이 느껴진다. 숲은 모든 생명의 고향이다.

잠시 신비로운 자연에 취해 발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벌려 가슴 깊숙이 숨을 크게 들여 마신다.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니 심신이 날아가는 듯하다. 아∼ 청정함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느린 걸음에 맞춰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다 보면 청명한 공기가 폐에 쌓인다. 자연과 함께하는 느긋한 걸음에 잡다한 생각이 씻겨 나간 듯하다. 마음 씻기를 지속하니 개운하기 그지없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곳에서 가빠진 숨을 고르려고 바위에 걸터앉아 땀을 식히면 여태껏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던 자연의 모습과 소리를 접하게 된다. 풀잎 아래 낙엽 사이를 은신처로 삼아 살아가는 벌레들, 재잘거리는 이름 모를 새들, 억압을 거부하며 날고뛰는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활기찬 모습들이 생기를 솟구치게 한다. 산은 단순히 숲의 집합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본거지이다.

어비산 부엉이 바위

길은 인간의 도덕선

산에 기대고, 하늘에 기대고, 바람에 기대어 본다. 세찬 바람이 분다. 운무가 산 중턱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구름이 춤을 춘다. 바람에 이끌려 산이 살아 움직인다. 산의 능선과 바위와 절벽이 수줍은 듯 다시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마치 활동사진처럼 시시각각 다른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보일 듯 말 듯 하여 상상으로 보고 마음으로도 보는 모습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할 만큼 아름답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의 솜씨가 그려내는 멋진 수묵화는 과연 환상적이다. 나의 눈이 호강하는구나!

계곡물은 거울처럼 맑고, 크고 작은 여러 모양의 소를 이룬 곳에서 파란빛으로 빛나고 있다. 바위를 세차게 때리며 흘러가는 계곡의 밝은 소리가 온 산을 가득 채운다. 바람 소리와 앙상블을 이루며 훌륭한 자연의 교향곡이 된다. 이처럼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마음이 거울같이 밝아진다. 물과 바람 소리가 청아한 것처럼 마음도 밝고 고운 마음으로 변화되리라. 내 삶도 밝게 살게 되리라.

이제는 내려가는 길이다. 그런데 내리막길을 한참 가도 표지기가 보이지 않는다. 문득 불안한 느낌이 든다. 뒤돌아 왔던 봉우리에 다시 올라 확인하니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불과 몇 걸음 차이로 갈림길에서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세상사도 아주 사소한 어긋남 때문에 땅을 쳐야 할 일이 자주 일어난다. 순한 길, 험한 길, 우회길, 직진길, 뚜렷한 길, 희미한 길, 그 많은 길 중에서 바른길을 구별하고 선택해 걷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걸어야 할 길과 걸어서는 안 될 길이 있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탐욕과 청빈의 혼돈의 길, 진실과 거짓이 갈등하는 길, 사랑과 미움의 고비를 일컫는다. 길은 인간 마음의 빛처럼 밝음과 어둠이라는 두 개의 마음이 항시 존재한다. 길에는 빨간불, 파란불, 노란불이 있다. 길은 사람의 생명선이며 또한 우리의 도덕선이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빤히 보이는 빨간불에 달려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왜 그럴까? 욕심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욕심에 눈먼 사람은 탐욕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낯선 곳의 갈림길에서 망설임, 안개 속으로 사라진 길이 궁금할 때, 목적지 불과 몇 미터 앞에서 맥없이 주저앉아 있을 때, 길인 줄 알고 왔는데 갑자기 길이 막혔을 때가 있다.

우리는 길 끝을 향해 달리느라 한 번쯤 쉬어 가도 좋은 길을 죽을 듯이 달리기만 한 적도 많다. 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길에 있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할 때가 있는 것과 같이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골몰히 생각해 봐야 한다.

삶이란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평생 길 위에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헤매고, 누군가는 잘못된 길로 간다. 인간은 삶을 살아가는 여정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아직도 가야 할 길, 끝나지 않은 여행길에서 앞만 보고 달리던 나는 갈림길 앞에서 모처럼 쉬며 정말 올바르게 가고 있는 것인지 묻고 또 묻는다. 성찰이야말로 올바른 삶을 살게 하는 이정표다.

겨울 원미산

월간산 2022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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