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확산금지 회의, 7년 만에.."단 하나 오해로 인류 전멸 위기"

유엔 총장, 우크라·중동·한반도 거론
블링컨 "미, 극단적 상황에 핵무기 사용"
미·영·프 "북한 CVID 목표에 전념할 것"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유엔본부에서 개막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제10차 평가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유엔본부/AFP 연합뉴스

냉전 종식 이래 핵무기의 위협이 가장 고조된 상황에서 핵무기 확산 방지와 군축을 위한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가 1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개막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개막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중동, 한반도의 핵 위기를 거론하며 “인류는 단 하나의 오해, 단 하나의 오판으로 핵무기에 의해 절멸될 수 있는” 위기에 놓였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회의 연설에서 세계 1위 핵탄두 보유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무모하고 위험한 핵무기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2월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국가 존립”이 위협 받으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블링컨 장관은 북한에 대해서도 “불법적 핵개발을 확장하면서 지역에서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며 “우리가 여기에 모여 있는 동안에도 7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장관들은 공동성명에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협과 이란의 핵개발을 비난하는 동시에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우리의 공동 안보에 점증하는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또 블링컨 장관은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미국 핵무기의 근본적 역할은 미국과 동맹, 파트너들에 대한 핵 공격을 억제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미국과 동맹, 파트너들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 상황에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런 발언은 미국 국방부가 ‘2022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에서 쓴 표현으로, 핵 공격에만 핵무기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재래식 무기 공격에도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함상욱 한국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은 일반토의에서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악용해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유일한 나라”라며 “북한의 핵 문제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단지 북한에 대한 메시지일 뿐 아니라 핵확산금지조약 체제 자체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970년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을 뒷받침하기 위한 이번 회의에서는 냉전 종식 이래 가장 심각한 핵보유국들의 분열이 드러났다. 올해 1월 핵확산금지조약이 인정하는 핵보유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기도 한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가 핵전쟁과 핵 군비 경쟁 방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동성명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번에는 미·영·프만 참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맞아 낸 성명에서 2026년 만료되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군축 협정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대체하기 위한 협상에 나설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도 핵 군축 협상에 참여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핵전쟁을 불사할 듯한 태도를 보이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 보낸 편지에서 “핵전쟁에서 승자라고는 없고 이 전쟁을 절대 시작하면 안 된다고 믿는다”며 “우리는 세계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위한 공평하고 분리 불가능한 안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군에 핵전쟁에 대비하라고 지시하던 태도와 대비되는 발언이다.

191개국이 참여한 평가회의는 5년마다 열리는데, 2020년 개최 예정이던 회의가 코로나19 유행 탓에 2년 연기돼 이번에 열리게 됐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