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량의 현장에서] 모래놀이를 지켜라

2022. 8. 2. 11:2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모래놀이하면서 뭘 배우는지 아세요? '성(城)이 무너졌어, 괜찮아, 친구도 도와줄 거야, 다시 하면 돼' 그걸 배워요."

공립유치원 교사이자 학부모인 이모 씨는 놀이가 아이들에게 회복 탄력성과 동지의식을 가르친다고 했다.

반도체·디지털 인재가 먹거리가 아닌 순간에도 자신의 삶을 오롯이 꾸려나갈 아이들이 필요한 시대다.

'아이들의 모래놀이'는 보호받아야 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래놀이하면서 뭘 배우는지 아세요? ‘성(城)이 무너졌어, 괜찮아, 친구도 도와줄 거야, 다시 하면 돼’ 그걸 배워요.”

공립유치원 교사이자 학부모인 이모 씨는 놀이가 아이들에게 회복 탄력성과 동지의식을 가르친다고 했다. 평생을 버틸 밑거름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한 아이가 눈앞의 어려움과 타인을 대하는 법을 이 유아기에 터득한다고 말한다.

지난달 29일 ‘만 5세 취학’을 골자로 한 교육부 학제개편안이 발표된 후 반발이 크다. 10만명이 넘는 사람이 사흘 만에 온라인 반대 서명에 참가했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교육계·학부모의 1주일 투쟁이 진행 중이다. 뱃속의 아이, 이제 걷는 아이, 아픈 아이를 가진 학부모들은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흘러내리는 땀줄기 속 이런 목소리를 내는 한편 조기유학·대안학교·원정출산이란 단어도 입밖으로 내기 시작했다. ‘경쟁하지 않을 시간’을 지키려는 움직임이다.

‘만 5세 취학’이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빨리 졸업하고 빨리 자리를 잡고.... 그러나 국민을 향한 설득과 절차·근거가 부족했다. 교육 격차를 이야기하지만 교육부 발표에서는 조손가정, 다문화가정, 장애아동가정 아이들에 대한 얘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양육자들은 되물었다. ‘격차가 문제라면 발달 특성에 맞게 성장할 환경, 양육자와 유년기를 안정되게 보낼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우선이지 않냐’고 말이다. 지역별 격차가 큰 유치원의 학급당 최대 인원은 줄이고 특수학급 수는 늘리며, 과도한 서열화를 해소할 방법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先) 발표 후(後) 의견수렴’이 돼버린 교육부 발표는 순서만 거꾸로 가는 게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보여준 예측 불가능 시대에서 우리는 봤다. 새로움 앞에서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생존과 직결된다는 걸 말이다. 선생님 말씀과 판서·교과서를 외우는 아이를 세계도 바라지 않는다. 반도체·디지털 인재가 먹거리가 아닌 순간에도 자신의 삶을 오롯이 꾸려나갈 아이들이 필요한 시대다. 교육부는 이 시대의 격차를 어떻게 메울지 고민했어야 한다.

많은 교육 수요자는 이번 교육부 발표로부터 윤석열 정부가 사람을 대하는 시선을 확인했다. 경제 논리로 ‘성과’와 ‘산업 인력’이란 단어를 쓰는 장관을 봤다. 교육 수요자 중 학생과 양육자는 뒷전이 되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의 정책들도 얼마나 호응을 받을지 의문이다.

올해는 어린이날 100주년이다. 어린이날 선언문에는 ‘어린이가 놀이와 여가를 즐기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줘야 합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아이들의 모래놀이’는 보호받아야 한다. 모래놀이터 위에서 뒤처지고 실패해도 손 내밀고 손잡을 수 있는 마음,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가치 하나쯤은 어른들이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hop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