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또 채용 공정성 논란.."최고점자가 최하점자?"
KBS는 지난해 7월부터 경북대 국악학과 교수 채용 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보도해왔습니다. 그리고 의혹 대상자들은 지난달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기소 돼 현재 형사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뭘 했기에 구속까지? 경북대 국악학과 채용비리 전말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00156
그런데 경북대학교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공정 의혹이 또 제기됐습니다. 국악학과와 같은 단과대학, 같은 건물을 쓰는 학과, 이번에는 음악학과입니다.
■신규 교수 공채… 수상한 채점표
올해 상반기, 경북대 음악학과는 피아노 전공 신임 교수 공채를 진행했습니다. 학교의 채용 기준에 맞춰 심사 기준표도 작성하고, 음대니까 당연히 실기 시험도 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채점표가 뭔가 이상하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KBS가 공익제보자와 전국국공립대학 교수노조를 통해 입수한 채점표를 보면, 특이한 점이 눈에 띕니다.
먼저 이 심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설명해 드리면, 학과 교수들인 심사위원 9명이 최종 심사에 오른 A, B, C 세 사람을 대상으로 '연주(배점 20점)'와 '강의(배점 10점)' 두 항목을 평가했습니다. 두 항목을 더해 만점은 30점, 최하점은 6점입니다. 후보자 A, B, C는 40여 명의 다른 지원자와 경쟁을 거쳐 최종 심사에 오른 최후의 3인입니다. 또한 음악학과 심사위원 9명의 전공은 기악, 성악 등 다양합니다. (경북대 '음악학과'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여러 악기와 성악, 이론과 작곡 등의 세부 전공이 있습니다. )
●심사위원 9명 가운데 5명(편의상 가 ~ 마 심사위원이라 하겠습니다)이 A 후보자에게 만점을 줬고, 한 명(바 심사위원)은 28점을 줬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B, C 후보자에겐 최하점인 6점부터 10점까지 부여했습니다. 차이가 크죠.
● 9명 가운데 다른 2명(편의상 사, 아 심사위원이라 하겠습니다)은 A 후보자에게 6점, 4점을 부여했습니다. 최하점 기준이 6점이기 때문에, 4점은 명백한 심사 오류지만 일단은 점수를 그렇게 줬습니다. 대신 이들은 B, C 후보자에겐 30점씩을 줍니다. 앞의 심사위원 6명과는 거의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심사위원 가운데 단 한 사람(자 심사위원)만이 A후보자 20 / B후보자 20 / C후보자 26 이라는, 편차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수를 부여했습니다.
예술계에서는 최종 심사에서 이토록 극단적인 점수가 나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특히 최종 후보자 3명을 추리기 위한 앞선 평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외부 심사위원들은 이들 세 후보자에게 합리적 수준에서 점수를 매겼다고 합니다. 즉, 세 후보 모두 극과 극을 오갈 정도의 실력 차이는 아니었다는 거죠. 취재진이 접촉한 피아노 전공자도 의아함을 보였습니다.
피아노 전공자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가 없고요. 취향이라고 해도 그 취향이라고 하는 게 약간이지. 이거는 개인의 취향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간격이 크죠.
심사위원의 취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를텐데 너무 이렇게 편 가르기 하듯이 딱 이렇게 나눠지는 게 의심스러워요."
종합적으로 채점표를 분석해보면 심사위원 가운데 6명은 A 후보자를 적극적으로 밀었고, 반대로 2명은 A 후보자의 합격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형철 / 국공립대교수노조 교권위원장, 경북대 교수
"우리 학교에서 최하점을 줄 때는 사유서를 작성하라고 합니다. 최하점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주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최하점을 남발했거든요.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9명의 심사위원 중에 8명이 특정 후보에게... 물론 거기에는 분포가 갈립니다만, 6명은 특정 후보에게 최고점을 주고 나머지 두 후보자를 최하점을 주고. 2명은 또 반대로 줬거든요.
이 심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음악학과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음악학과 관계자
"심사는 각 위원이 개별적으로 진행한 뒤 점수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개별 심사위원이 알지 못한다."
채용 절차는 그대로 진행됐고, 1등인 A 후보자는 더 높은 단계인 총장 면접까지 마쳤습니다.
■ "담합이 의심된다" ... "개별 심사위원의 재량"
외부에서 봐도 이상한 채점표. 당연히 학교 내부에서도 이런 심사가 이상하다는 이의가 제기됐습니다.
이런 이상한 점수 부여는 앞서 지난해 1학기에 진행된 경북대 국악학과 채용 과정에서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특정 후보자에게 점수를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국정 감사를 통해 채점표도 공개됐지만 경북대 대학본부 측은 '학과의 자율성'을 명분 삼아 공채를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개입 끝에 심사위원이었던 국악학과 교수 2명은 구속 기소됐고 현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흡사한 일이 또 벌어진 만큼, 대학 내부에서도 학교 측에 해석을 구하는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대학 본부의 입장은 "그대로 진행"이었습니다.
대학 본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한 심사위원이 특정 후보자에게 최저점 기준보다 낮은 4점을 준 것은 '단순 실수'로, 그 자리에 6점을 주더라도 순위 변동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또 채용 공정성 의혹에 대해선 점수 배점은 개별 심사위원의 권한이자 재량으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심증만으로는 평가표가 잘못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정성 의혹을 제기한 이들은 경찰 검찰도 아닌, 대학 안의 교수와 학생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수사기관 관계자가 아닌 만큼 채용 과정에서 돈이 오간 증거라든지 심사위원 담합과 관련한 사전 녹취록 등 객관적 증거를 갖고 있긴 힘들죠.
앞서 국악학과 교수들이 채용 비리 혐의로 구속된 게 지난 6월 27일입니다. 이후 학교가 음악학과 교수 채용에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내린 공문을 보낸 건 7월 11일입니다. 공문을 보내기 불과 보름 전, 비슷한 일로 국악학과 교수들이 구속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면, 한 번쯤은 절차를 재점검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았을까요? 학교 안팎에서는 교수 구속 사태를 겪고서도 재량이라며 넘어가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형철 / 국공립대교수노조 교권위원장, 경북대 교수
"불행한 사태(국악학과 교수 구속)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본부는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 재량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해도 됩니다. 앞으로 그렇게 하세요'라고 하는 사인이 나갔다고 생각하죠. 이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KBS가 국악학과 교수 채용 의혹을 제기한 지 1년이 지나서야, 해당 교수들은 구속됐습니다. 음악학과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음악학과에 진짜 담합이 있었는지 아닌지, 진실이 드러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어쩌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을 학교 본부가 그저 지켜만 본다면 의혹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교수 채용 공정성 시비도 끝나지 않을 겁니다. 국악학과 사례 같은, 일부 교수의 일탈 시도 역시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불미스런 사태로 크게 실추된 국립 경북대학교의 위상과 신뢰 회복 여부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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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 (kinch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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