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시다, NPT서 '핵무기 없는 세계' 제시했지만.."실현 불투명"
기사내용 요약
러 우크라 침공으로 "상황 일변해"
美핵우산 기대는 日 태도 '모순' 지적도
[서울=뉴시스] 김예진 기자 =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했으나 실현이 어렵다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2일 지지통신, 니혼게이자이 신문(닛케이) 등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날 새벽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막한 NPT 평가회의에 참석해 영어로 연설했다. 일본 총리로서는 첫 참석이다.
기시다 총리는 핵보유국들에 대한 핵전력 투명화를 촉구하고 NPT 체제 유지·강화를 위한 각국의 건설적 대응을 촉구했다.
그는 "러시아에 따른 우크라이나 침략 속에서 핵 위협이 진행돼 핵무기 참화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세계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무기 없는 세계로 가는 길은 한층 험난해졌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피폭지 히로시마(広島) 출신 총리로서 아무리 갈 길이 험난하다 하더라도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위해 현실적인 발걸음을 한 발씩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그리고 그 원점이야말로 NPT다. NPT는 군축·비확산 체제의 초석인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 유지를 가져왔다. NPT 체제를 유지·강화하는 것은 국제사회 전체에게 있어 이익"이라며 각국의 대응을 호소했다.
또한 "이 회의가 의의있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 협력하자"며 일본이 NPT의 수호자로서 협약을 지키겠다고 했다.
일본의 행동계획 '히로시마 액션 플랜'도 제시했다. "핵무기가 없는 세계라는 이상과 엄격한 안보 환경이라는 현실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로드맵의 첫걸음으로서, 핵 리스크 저감에 힘쓰며 5가지 행동을 기초로하는 히로시마 액션 플랜으로 우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5가지란 ▲핵무기 불사용 계속의 중요성 호소 ▲핵보유국에 핵무기에 사용되는 핵물질 생산 현황 정보 공개 요구 등 핵전력 투명화 촉구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발효 목표인 정상급 회의를 9월 유엔 총회에 맞춰 일본이 주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대응 ▲세계 젊은이들의 피폭지 히로시마·나가사키(長崎) 방문을 위한 유엔 1000만달러 거출, 기금 창설 등이다.
아울러 그는 내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점을 거론하며 "히로시마의 땅에서 핵무기 참화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강력한 약속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접은 종이학 한 마리를 손으로 들어보이며 "종이학은 세계에서 평화와 핵무기 없는 세계를 기원하는 상징이다. 뜻을 같이하는 세계의 여러분과 함께 걸음을 나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처럼 기시다 총리가 '핵무기가 없는 세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당장 실현은 어렵다는 게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지지통신은 전쟁 피폭지·히로시마 선거구 출신 기시다 총리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했지만 "그 길은 멀고 험난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1월 NPT로 핵보유가 허용된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국은 "핵 전쟁에 승자는 없으며 결코 싸워서는 안 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핵군축 협상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기대가 부상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달인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 외교소식통은 지지통신에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협으로 "상황이 일변했다"고 지적했다.
나가사키 대학 핵무기폐절연구센터(RECNA)에 따르면 세계 핵탄두는 지난 6월 기준 1만2720기로 추정된다. 러시아가 5975기, 미국이 5425기로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미러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핵보유 5개국의 대화도 정체됐다. 핵군축 기운은 급속히 냉각됐다.
보유 핵탄두가 350기로 추정되는 중국도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2030년까지 1000기까지 핵탄두를 늘릴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지난 3월 공표한 '핵태세검토(NPR)' 보고서에서 핵 억지력 유지가 "최우선 사항"이라고 명기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에서 내걸었던 핵무기 역할 축소는 담기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핀란드, 스웨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결정하면서 러시아가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 6월 보고서를 발표하고 그간 감소세를 보였던 세계 핵탄두 수가 앞으로 10년 간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냉전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한미일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본이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NPT는 5년마다 평가회의를 열고 있다. 이번 회의는 코로나로 약 2년 연기돼 열렸다. 2015년 회의에서는 핵군축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핵보유국, 비보유국 간 대립으로 합의문 채택이 불발됐다.
실망한 비보유국들이 중심이 돼 2017년 핵무기금지조약(TPNW)를 만들었다. 그러나 핵보유국들은 일체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일본도 역시 참가하지 않았다.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핵 억지력을 부정하게 된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비보유국인 일본도 핵보유국인 북한, 러시아, 중국 등에 둘러싸여 미국의 핵우산 아래 핵억지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이러한 자세에 대해 비보유국 NGO는 물론 일본 내 피폭자들의 비판 목소리가 높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연설에서도 핵무기금지조약은 언급하지 않았다. 핵보유국, 비보유국 간 '가교 역할'이라는 언급도 않았다.
아사히는 "기시다 총리는 핵보유국이 참여하는 NPT를 통해 현실적인 걸음을 추진하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가 주도해 중국, 러시아를 끌어들인 군축 논의가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당장 미국의 핵우산에 보호받으며 미래적으로는 핵무기 폐지를 지향하겠다는 자세는 모순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aci2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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