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관련자, 유공자로 인정받아야"

2022. 8. 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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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장 인터뷰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는 각각 ‘국가유공자’와 ‘민주유공자’다. 당사자와 가족들은 보훈 대상으로 국가로부터 예우를 받는다. 그렇다면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는 어떨까. 현재 법률상 이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다.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이 지난 7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에 설치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를 위한 천막 농성장 앞에 서 있다. / 정희완 기자


1995년 스물여섯의 나이로 분신 사망한 장현구 열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학생운동에 앞장섰다가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고, 출소 후에는 대학교수와 교직원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다.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의 아버지인 장남수(81)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은 “도대체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무슨 말이냐”라며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해 유공자로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 법의 목적은 명예회복”이라며 “혜택을 받는 대상자가 얼마 되지는 않지만, 법안 내용에서 특혜 부분을 빼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부터 9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장 회장은 지난 22년 동안 민주유공자법이 국회에서 표류되는 상황을 지켜봤다. 2000년 16대 국회부터 최근까지 해당 법은 수차례 발의됐지만 대상자 범위, 사회적 합의 등을 이유로 공전을 거듭했다. 우원식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159명, 정의당·기본소득당·무소속 의원 등 170명이 지난 7월 20일 법 제정 추진 의사를 밝혔다. 이들이 추진하는 법안은 우 의원이 2020년 대표발의했다.

유가협은 400일 넘게 국회 주변에서 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300일 가까이 농성도 진행 중이다. 장 회장을 지난 7월 25일 농성장에서 만났다.

-국회의원 170명이 법 제정 의지를 보였다.

“민주화를 이끌다 많은 분들이 사망했고, 이들이 민주주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민주당 의원들은 그 혜택을 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민주유공자법을 못 만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열사들에 진 빚을 갚으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힘이 있을 때 꼭 해야 한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반대한다.

“권성동(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처럼 정치적 목적이 있는 사람들만 반대한다. 다른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지하리라고 본다. 민주당이 현재 의석으로 마음만 먹으면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러나 가능하면 국민의힘과 합의를 통해 법을 만들었으면 한다.”

권 대행은 지난 7월 25일 민주유공자법을 ‘운동권 신분세습법’이라 지칭하며 “운동권 출신과 자녀들은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원받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생애주기에 맞춰 특혜를 준다”고 말했다.

-손팻말 시위와 천막농성은 어떻게 시작했나.

“지난해 6·10항쟁 기념식에서 손팻말을 들고 민주유공자법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열흘 뒤부터 매일 하게 됐다. 천막농성은 지난해 10월 7일부터 시작했다.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여야 간사가 민주유공자법 처리에 합의했다. 그래도 믿을 수 없으니 법 제정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농성을 하게 됐다. 그런데 통과가 안 됐다. 천막은 지난해 접을 줄 알았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 6월 10일 제35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 이준헌 기자


-올해 6·10항쟁 기념식 때는 삭발까지 했다.

“6·10항쟁은 고문치사로 사망한 박종철,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로부터 시작됐다. ‘이 두 분마저 민주유공자로 예우하지 않으면서 무슨 기념식을 하느냐’는 항의의 뜻으로 삭발을 했다. 법을 만들어 달라는 호소였다. 기념식 행사 전에 삭발식을 했다. 기념식 자체를 방해하면 (정부가) 앞으로 기념식도 하지 않겠다고 할까봐 그랬다.”

-지난 1월 소천한 배은심 여사도 법 제정을 외쳤는데.

“여기서 주무시진 않았지만 손팻말 들고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다 광주로 갔는데 일주일 후에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강한 줄로 알았는데….”

4·19와 5·18의 경우 사망·부상·행방불명자를 비롯해 신체적 희생이 없는 이들도 유공자로 인정했다. 2020년 9월 기준 4·19와 5·18 유공자는 각각 862명, 4406명이다.

이번 민주유공자법은 5·18유공자법을 차용했다. 다만 적용대상을 사망·부상·행방불명자로 범위를 좁혔다. 유죄판결(구금 포함)·징계·해직 등의 피해를 본 이들은 제외했다.

이에 따라 민주유공자법 적용 대상자들은 모두 829명이다. 2001년 제정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심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이들이다. 이때 일회성 보상을 받았다.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함께 인정받았던 징계·해직 등의 희생자 9015명은 이번 민주유공자법 적용대상에선 빠졌다.

혜택은 4·19와 5·18 유공자처럼 당사자와 가족이 교육·취업·의료·대부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특별전형 등 대학 입시에서 받는 특혜는 없다. 입학금, 등록금 등 수업료 지원을 받을 순 있다.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20명 이상 고용하는 공·사기업, 200명 이상 고용하는 제조업체 등에 취업할 때 5~10%의 가산점을 받는다.

-그간 법 통과가 안 된 이유는.

“결정적인 이유는 대상자 범위 때문이었다. 2005년에 법안을 제안할 때 사망자와 상이자만 우선 대상으로 하려고 했다. 내부에서 포괄적으로 유죄판결·해직·징계 등까지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우리도 민주화운동을 했는데, 왜 예우에서 빠지냐’는 반발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포함해 법안을 추진했다. 이것 때문에 국회에서 안 됐다. 일단 법을 만들고 개정을 통해서 확대할 수도 있다고 본다.”

-설훈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다가 며칠 만에 철회했다.

“그 법안은 유죄판결·해직·징계 등을 받은 9000여명까지 모두 예우하자는 내용이었다. 법안이 비난을 받고 철회된 이후 대상 범위를 포괄적으로 하자고 주장한 이들이 조용해지긴 했다.”

-이번 법 추진 과정에서도 범위가 논란이 될 수도 있겠다.

“기본적으로 감옥 갔던 사람들도 당연히 공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민주화운동을 했는데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혜택받으면 안 된다? 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했는데 왜 대접을 못 받나. 다만 현실 정치에서 법을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되니까 뺀 것이다. 포괄적으로 예우하기에는 아직 시대적 여건이 안 된 것 같다.”

-5·18유공자법과 내용이 거의 같다.

“그렇다. 혜택을 받는 사망자는 136명의 부모, 배우자, 자녀다. 사망자의 93% 정도가 미혼이다. 자녀가 있어도 이미 나이가 찼다. 교육 혜택은 30세까지만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법이 시행되면 대학에서 ‘민주유공자 특별 전형’을 만들게 된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법에 없는 내용이다.”

2020년 6월 10일 서울 남영동 인권기념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에게 경례하고 있다. / 대통령실(청와대)사진기자단


-청년들 사이에서는 취업 가산점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다.

“자녀들의 취업 연령이 한참 지나 대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취업지원도 자녀 1명만 가능하다. 이 외에 혜택은 고문이나 폭행으로 불구가 된 분들에게 적용되는 의료보험이 있다. 고궁 같은 곳의 무료입장 등이다. 전체적으로 특혜 대상자 자체가 미미하다.”

유가협이 파악한 민주화운동 사망자 현황을 보면, 135명(1명은 파악 불가) 가운데 30세 이하 자녀를 둔 사망자는 1명(0.7%)에 불과하다. 31세 이상은 28명이다. 이 비율을 부상자에 적용하면 (혜택을 볼 수 있는) 30세 이하 자녀는 5명 이내로 추산된다. 부상자의 모든 자녀가 취업 때 가산점을 받는 것도 아니다. 부상자 중에서도 장해등급이 특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

-우상호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이 반발하자 ‘정 돌아가신 분의 혜택이 문제라면 이 혜택도 (법안에서) 들어내겠다’고 말했다. 동의하는지.

“유공자로 인정해 명예회복만 해준다면 그것도 좋다. 그런데 실무적으로 논의를 해보면 특혜가 별로 없어서 뺄 게 없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대상자가 별로 없다. 빼면 뭐하나, 있으면 또 뭐하나. 열차 할인이나 의료보험 같은 걸 빼겠나. 4·19와 5·18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면 차등되는 법은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민주유공자법이 꼭 필요한 이유는.

“당시에는 시위하다가 죽거나 희생당한 사람들을 정부에서 ‘불순분자’라고 불렀다. ‘빨갱이’라고 했다. 이들의 가족들도 정부기관에서 동향을 살폈다. 어딜 가고, 뭘 하는지 감시했다. 나를 전담해 감시했던 사람도 알고 있다. 불순분자가 아니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죽은 사람들이다. 유공자로 지정해 이런 시각을 불식시켜야 한다. 법적으로 유공자 자격을 인정받아 명예회복을 하자는 것이다. 국가가 유공자로 인정하면 그런 손가락질을 안 할 것 아닌가.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무슨 말인가. 유관순 열사를 ‘독립운동 관련자’라고 하면 되겠나. 똑같이 비교할 순 없지만 열사들도 유사한 역할을 한 것 아닌가.”

-아들을 일찍 잃었다.

“공부하라고 대학에 보냈는데, 그런 쪽(운동)으로 가니까 ‘학생은 공부하는 게 목적이다. 졸업하고 나서 그게 옳다면 그때 그거 하라’고 말했다. 아들은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과의 의리를 생각하니 창피해서 빠지지 못하겠다고 했다. 앞장서서 했던 것 같다. 감옥 가고 제적당하고 교직원들로부터 폭행당했다. 억울하다 보니 그런 선택(분신)을 한 것 같다.”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다. 여론조사업체 알앤써치가 뉴스핌의 의뢰로 지난 7월 23~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민주유공자법 찬반 조사를 보면 찬성 43.9%, 반대 40.2%로 집계됐다. 18세 이상 20대는 찬성 41.1%, 반대 35.7%를 나타냈다. 30대는 찬성 43.3%, 반대 40.7%였다. 데이터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7월 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도 찬성 42.6%, 반대 40.6%가 나왔다. 18세 이상 20대에서는 찬성 44.5%, 반대 31.9%로 집계됐다. 30대는 찬성 43.3%, 반대 37.8%였다.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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