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특별기여자의 '한국살이 1년'.."잘 정착하고 있습니다"
카불 함락 긴박한 상황 속 한국기관 도움으로 무사히 가족과 탈출
"지역사회 뿌리내리며 한국 적응 중..퇴근 후 가족과 저녁 즐겨"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좋아지고 있습니다. 몇 달 전부터 경기도 한 도시에 정착한 후 한국 사회와 사람에 익숙해지고 있어요. 어디든 갈 수 있어 좋아요. 일하고, 퇴근한 후 가족과 함께 요리해서 먹는 저녁도 좋습니다."
약 1년 전인 2021년 8월 말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390여 명이 탈레반 정권을 피해 한국에 왔다. 이들은 충북 진천과 전남 여수 등에서 5개월간 직업훈련과 언어·문화 교육을 받았다. 올 초부터는 울산과 인천 등 지역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에서 국제사업을 담당하는 누룰라 사데키(33)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사데키 씨는 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연수원 생활 시절에는 집은 구할 수 있을지, 생활을 꾸려갈 수 있을지,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지 등 여러 고민을 안고 살았다"며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잘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1년간 그와 그의 가족은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고향인 카불에서 그는 세이브더칠드런 아프간 사무소에서 조달 업무를 담당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이 아프간 바그람 미군 기지에 지은 한 병원에서 2년간 약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안전이었다"고 했다.
5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자살폭탄 테러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탈레반은 학교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무고한 학생들이 잇달아 희생됐다.
그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장소는 없다는 생각이 든 순간 고향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탈출하는 과정은 긴박했다.
조만간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시킬 거라는 소문은 파다했다. 그는 코이카를 통해 특별기여자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곧 출국할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았지만, 당시 아프간 정부의 기능이 대부분 마비된 탓에 관련 서류를 제대로 준비하기가 힘들었다.
공항에 도착했지만, 탈레반이 사데키 씨 가족의 출입을 막았다. 다행히 한국인 담당자가 상황을 조율해 무사히 출국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는 "7살과 5살이던 두 딸도, 2살이던 아들도 어떤 상황인지 대략 눈치를 챌 정도였다"며 "탈레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에 많이 무서워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탈출한 지 보름도 안 돼 카불은 탈레반에 함락됐다.
한국에서의 삶도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연수원 때부터 사회에 정착한 지금까지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한국어를 능숙하게 쓰고 싶어 주말에는 서너 시간씩 공부한다"고 했다.
이어 "모국에서 일하던 경력과 인연을 살려 3월부터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에서 일하고 있다"며 "생활도, 문화도, 한국어도 언젠가 익숙해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기쁜 소식도 생겼다. 막내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그는 "첫째는 초등학교에, 둘째는 유치원에 입학했다"며 "가족 모두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밝혔다.
"걱정은 없냐"고 묻자 그는 "고향에 남겨둔 어머니와 형제, 조카들"이라고 답했다.
그는 "탈레반 집권 후 실업률이 높아졌고, 특히 여성은 취업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며 "의료 분야를 제외한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전부 금지된 탓에 교사였던 여동생은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탈레반은 여성 권리 보장 등을 약속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더욱 악화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자아이들은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면 더는 교육을 받을 수 없다"며 "이 때문에 가정폭력이나 조혼, 노동 착취 등 위험에 노출됐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재정적 지원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숙해져 가는 한국에서의 삶과는 별개로, 여전히 그의 꿈은 '귀향'이다.
"뉴스에서 흔히 보이는 전쟁터와 폐허가 아프간의 진정한 모습이 아닙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유적이 많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자연과 사계절도 있고요. 언젠가 평화를 되찾은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재회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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