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오르면 뭐하나, 엔화는 더 뛰는데"..기업 발목 잡는 환율 [조지원의 BOK리포트]

조지원 기자 2022. 8. 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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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애로사항으로 환율 꼽는 기업 늘어
환율 올라도 수출 경쟁력에 영향 없어
日 실질실효환율 1970년대 이후 최저
韓은 2010년 통화 가치 비슷한 수준
1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1300원을 웃도는 원·달러 환율을 경영상 어려움으로 꼽는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론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 시장에 판매하는 제품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수출 기업엔 호재가 된다. 하지만 글로벌 달러화 강세로 우리나라와 수출 경쟁 관계에 있는 엔화 등도 함께 약세를 보이는 만큼 환율 상승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환율 상승이 원자재 수입 가격을 밀어 올리면서 경영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이달 13일부터 20일까지 전국 3255개 법인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조사(BSI)를 진행한 결과 환율을 경영 애로 사항으로 꼽는 제조업체 비중이 6.8%로 6월 조사(5.1%) 때보다 1.7%포인트 늘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32.2%)이나 불확실한 경제 상황(17.4%), 인력난·인건비 상승(10.3%), 내수부진(7.9%)에 이어 5위를 기록했지만 증가 폭은 가장 컸다. 비제조업체 중에서도 환율을 경영 애로 사항으로 꼽은 기업 비중이 2.4%에서 4.2%로 1.8%포인트 늘었다.

조사 기간 당시 환율이 1306원(7월 13일)에서 최고 1326원(7월 15일)까지 오르면서 기업들의 답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환율 상승으로 원자재 수입 가격이 오르는 영향도 있지만 환율 상승이 수출 여건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달러화 강세로 원화만 통화 약세인 것이 아니라 일본 엔화 등 다른 통화도 약세”라며 “환율이 오른다고 수출 기업 경쟁력이 생기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은 130엔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달 14일 139.07엔까지 오르면서 24년 만에 엔화 가치가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원엔 재정환율도 100엔당 984원으로 1000원 아래로 떨어진 지 오래다. 엔화 가치가 원화 가치보다 빠르게 떨어지면 원엔 재정환율이 내려간다. 이 경우 해외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한국 제품보다 높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과의 수출 경합도가 예전보다 낮아졌다고 하지만 철강, 화학 등 주요 산업에서는 여전히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실질실효환율(REER)로 살펴보면 일본 상품과 한국 상품의 수출 경쟁력 격차는 더욱 벌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실질실효환율은 명목환율에 각국의 물가지수와 수출구조를 가중치로 이용하기 때문에 각국의 수출 경쟁력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생산과 소비에 대한 실질적인 구매력을 평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출·수입 가중치를 산출해 수출입 영향을 엄밀하게 분석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제기구도 통화 가치의 수출 경쟁력을 분석하려면 실질실효환율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일본의 실질실효환율은 59.16으로 관련 통계가 공표된 1994년 1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니혼게이자이는 1972년 6월(67.49) 이후 50년 만에 최저로 보고 있다. 기준연도(2010년)를 100으로 두고 이보다 높으면 해당 통화 가치가 다른 교역국보다 고평가된 것이고, 100 미만이면 저평가됐다는 것이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일본 국민의 구매력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생겼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6월 기준 102.04로 201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9월(99.71) 이후 실질실효환율이 100 미만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일본의 실질실효환율과 우리나라 실질실효환율은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2010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거의 변동이 없는 반면 일본은 큰 폭으로 떨어진 만큼 수출 경쟁력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 하락) 수출이 늘면서 경상수지와 무역수지 흑자 폭도 커진다는 이론은 사실상 옛말이 됐다. 환율이 내렸을 때(원화 가치 상승) 수출이 줄어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반도체, 철강, 석유제품 등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목의 가격은 환율 변동보다 시장 수급 상황에 따라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원자재 비용 부담이 늘면서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질실효환율이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도 최근 축소됐다는 분석이다. 한은 조사국은 지난해 11월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 요인 분석’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2012년 이후 큰 폭 확대된 가운데 환율 등 금융 요인의 기여도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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