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치하 1년] ① 경제난에 자연재해까지..인권도 암흑 속으로
여성 인권 제한·언론도 탄압..절망 빠진 국민은 마약 탐닉
테러집단 활개 우려도..최근 국제사회엔 이례적 유화 손짓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지난해 8월 15일 이슬람 강경 수니파 무장조직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로 기세등등하게 입성했다.
아프간 전역을 단숨에 장악한 후 수도까지 손에 넣은 것이다.
친서방 성향의 아프간 정부는 항복을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혼비백산한 채 해외로 도피했다.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정권을 잃은 탈레반이 20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탈레반은 곧이어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입각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엄혹하게 사회를 억눌렀던 1차 집권기(1996∼2001년) 때와 달리 여러 유화 조치도 내놨다.
하지만 이후 탈레반 치하 1년간 아프간은 다시 암흑기로 되돌아간 분위기다.
경제는 더욱 무너져내렸고 여성 등의 인권은 크게 뒷걸음질쳤다.
대탈출 속 20년 전쟁 막 내려…탈레반, 체제 구축 노력에도 '한계'
예상보다 빨리 카불이 무너지자 현지 외국인과 시민은 패닉에 빠졌다.
이들은 '유일한 탈출구'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 몰려들었다. 공항과 주변 일대는 대혼란의 아수라장이 됐다.
절박함에 몰린 이들은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렸다가 공중에서 떨어져 숨지기도 했다. 총격에 숨진 이도 나왔다.
아기만이라도 살려달라며 철조망 너머 외국군에게 넘겼다. 베트남 전쟁의 '사이공 함락'을 방불케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미군 C-17 수송기가 아프간 현지시간 8월 30일 밤 11시 59분 카불 국제공항을 이륙했다. 미국 역사상 최장이었던 아프간 20년 전쟁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탈레반은 발 빠르게 정권 접수에 나섰다. 다음달 7일 과도정부 내각 명단부터 발표했다.
조직 서열 2인자이자 '실세'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정부 수반이 되리라는 예상을 깨고 '경량급' 물라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가 총리 대행으로 임명됐다. 바라다르는 부총리 대행을 맡았다. 조직 내 정파들이 경쟁 끝에 타협한 결과였다.
내각에는 아프간 전 정부 출신 관료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성도 배제됐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배자 등 내각 멤버 대부분이 탈레반 핵심 강경파였다.
내각은 구성됐지만 탈레반은 통치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관료, 통역가, 과학자, 의사, 기술자 등 고급 인력이 해외로 탈출했기 때문이다. 사회 여러 조직은 붕괴했다.
이를 대체할 탈레반 핵심 조직원 수는 10만명 안팎에 불과했다. 그나마 조직원은 산속에서 총 쏘는 것만 알 뿐 대부분 문맹이었다.
여성 인권 추락·언론도 암흑기…국제사회 인정도 못 받아
탈레반은 집권 후 여러 유화 조치를 발표했다. 포용적 정부 구성, 인권 존중, 전 정부 공무원에 대한 사면령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약속은 좀처럼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올해 들어 여성 인권은 크게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레반 정부는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의 등교를 전면 허용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음에도 지난 3월 새 학기 첫날 말을 바꿨다.
놀이동산 이용에도 남녀 분리 정책을 도입했다.
우상 숭배라며 옷가게 마네킹의 머리 부위를 떼어 내라고 지시했다. 여성은 남성 보호자 없이는 장거리 여행도 할 수 없게 됐다.
여성에 대해서는 얼굴을 모두 가리는 부르카 착용도 의무화됐다.
언론인도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탈레반 집권 후 불과 6개월만에 기존 언론사 중 60%가량이 문을 닫았다. 새 언론 규정과 탄압,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탈레반은 새 언론 규정을 통해 이슬람에 반하거나 국가 인사를 모욕하는 보도를 금지했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언론인이 구금되거나 폭행당하는 일도 이어졌다.
전 정부 관리들이나 시아파 등 소수 집단이 공격당한다는 보도도 계속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국제사회는 아직 탈레반을 공식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경제난 속 가뭄·강진 겹쳐…자존심 꺾고 국제사회에 'SOS'
수십 년간 전쟁과 테러에 시달리며 자립 능력을 상실한 아프간 경제는 지난 1년간 더 붕괴했다.
공공 부문 경비의 75%가량을 맡아온 '재정 기둥' 해외 원조가 우선 끊어졌다. 아프간 정부의 해외 자산 90억 달러(약 10조8천억원) 이상도 동결됐다.
그러자 물가는 폭등했고 실업자는 쏟아져 나왔다. 생계를 위해 장기밀매를 하는 주민도 속출했다.
유엔은 올초 아프간 인구 4천만명 가운데 2천300만명(58%)이 '극심한 기아'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해외에서 떠도는 아프간 난민 수는 260만명이고 국내에서 난민 신세로 전락한 이들도 350만명에 달한다.
가난과 절망에 찌든 이들은 거리로 내몰리면서 마약 중독자들도 늘어갔다. 경제난에 시달린 농부들은 밀 대신 아편 등의 원료인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다.
이에 탈레반은 올초 양귀비 재배 전면 금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아프간은 세계 최대 아편 생산국으로 악명 높은 나라다.
와중에 극심한 가뭄이 계속됐다. 지난 6월에는 남동부에 강진까지 발생, 1천150명 이상이 숨지고 가옥 1만채가 부서졌다.
탈레반은 강진 참사가 터지자 이례적으로 자존심을 꺾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다. "국제기구의 구호 작업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또 광물 개발 등 중국과 경제 협력 확대에 나섰다. 파키스탄 등으로 석탄과 과일 등을 수출하며 교역 강화도 추진했다.
최고지도자인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는 지난달 초 "우리는 미국을 포함해 세계와 외교, 경제, 정치적으로 좋은 관계를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쿤드자다가 이런 '유화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탈레반이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인정받고, 국제사회 원조를 확대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동시에 미국도 탈레반 정부와 동결 자금 해제를 위한 협상을 벌이는 등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아프간 국내외 상황이 조금씩이나마 변화하는 조짐으로 여겨진다.
근절되지 않는 IS-K…저항군 활동도 '꿈틀'
탈레반 정부로서는 자국 내에서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극단주의 세력의 활동도 골칫거리다.
특히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분파조직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 가장 큰 위협이다.
IS-K는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수니파지만 탈레반의 태도가 온건하다며 비난해왔다.
그들은 지난해 8월 26일 카불 공항 폭탄 테러를 일으켜 18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후 같은 해 10월에도 쿤두즈와 칸다하르의 시아파 모스크에서 잇따라 자폭 테러를 감행, 100명 이상을 숨지게 했다.
이후에도 카불, 동부 잘랄라바드 등에서 테러를 이어왔다.
이에 탈레반은 IS-K의 은신처를 급습하는 등 대대적인 토벌 작전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노력과 달리 IS-K 축출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러시아 정부는 탈레반 집권 후 2천명 수준이던 IS-K 대원 수가 최근 6천명으로 3배가량 불어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와중에 알카에다 같은 테러단체도 전례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유엔 보고서도 나왔다.
저항군의 활동도 조금씩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탈레반 통치에 반기를 들고 싸우는 아프간 민족저항전선(NRF)은 지난 6월 탈레반의 헬리콥터를 격추하고 노획했다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NRF는 작년 9월 판지시르의 주도(州都)가 탈레반에 장악된 후 산과 계곡 등으로 숨어 들어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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