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패권' 총력전..美·中에 끼인 韓반도체 어쩌나
미국이 중국과의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총력전에 나섰다. 미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법안을 추진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 통제조치를 한층 강화했다.
미국은 또 일본과 최첨단 반도체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에 나서면서 한국과 대만 등에는 반도체 동맹인 이른바 '칩(CHIP)4 동맹'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 '혈맹' 미국과 '최다 수출국' 중국 사이에 끼인 한국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일본·대만을 묶어 '칩4 동맹'을 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지난 3월부터 각국 정부에 참여를 요청했다. 당초 8월 말이 답변 시한으로 알려졌지만 정부 당국자는 이를 부인했다. 그렇다고 무한정 미룰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칩4'는 세계적인 공급망 불안 이후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과 파트너끼리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의 일환이다. 각기 방위조약으로 미국과 연결된 동아시아 3국이 미국과 하나로 뭉쳐 반도체 공급망을 꾸린다는 계획이다.
최근 방한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아 "공급망을 더 강화하기 위해 주요 우방과 경제 협력을 굳건히 해야 하고, 여기에는 한국도 포함된다"며 "공급망에서 특정 세력·국가에 지배적 권한이 넘어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최근 일본과 외교·상무 장관의 '2+2 경제 회의'에서 회로 선폭 2나노미터(㎚, 10억분의 1m)의 최첨단 반도체를 공동 연구하기로 했다. 일본 언론들은 대만의 유사시를 대비한 중국 견제의 성격이 있다고 분석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과 미국은 (중국에 의한) 대만 유사시 반도체 조달이 막힐 것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며 양국이 서로 보완해 첨단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대만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과 대만을 협력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기우다 일 경제산업상은 "(연구조직은) 국외 기업이나 연구기관에도 열려있다. 미·일, 나아가 우호국의 협력을 리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 정부가 "대만 외에 한국도 포함해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지역의 기업에 협력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미·일이 먼저 나서고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대만이 합류할 경우 사실상 '칩4 동맹'의 활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은 아울러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한국과 대만 기업을 유치하는 데도 팔을 걷고 나섰다. 1년 넘게 의회에 계류 중이던 반도체지원법은 지난주 급물살을 타며 상원과 하원에서 차례로 가결됐고, 이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만 남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이 법안에 의해 총 2800억 달러(약 365조 원)를 반도체에 투자한다. 반도체 제조시설 등에 투입되는 보조금과 세액공제만 770억 달러(약 100조 원)에 이른다.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28%)을 비롯해 대만(22%), 일본(16%), 중국(12%) 등 아시아 4개국은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8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10나노 이하 최첨단 반도체의 경우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등 두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추진 등을 계기로 미국 내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향후 20년간 최대 2천억 달러(약 261조 원)를 투자해 반도체 생산공장 11곳을 짓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고, TSMC도 대미 투자를 늘릴 전망이다.
미국은 이처럼 일본·한국·대만과의 반도체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방해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의 중국 수출 제한 기준을 기존 10나노에서 14나노로 강화했다.
14나노는 첨단 반도체 공정의 관문으로 꼽힌다.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 SMIC가 최근 7나노 반도체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기존 수출 제한 조치의 효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미국이 수출 통제를 한층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문제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반도체 기업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중국 우시에 D램 공장이 있는 SK하이닉스는 이미 초미세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배치에 제동이 걸린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밖에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반도체 수출국이기도 하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 1280억 달러 가운데 대중(對中) 수출은 502억 달러로 39%를 차지했다. 홍콩을 포함하면 60%나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각각 30%가 넘는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기술은 미국에 의존하고, 수요는 중국에 달려 있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 가속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 속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앞으로 애매모호한 중립 유지는 어려워질 것"이라며 "미국은 다수의 반도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기술 통제로 외국의 반도체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미국의 반도체 동맹에 참여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루이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 부소장 겸 전략기술연구국장은 "중국은 아직은 반도체를 대량생산할 수 없어 한국산 반도체 구입을 중단하겠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은 중국 반도체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활용해 맞서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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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종관 기자 panic@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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