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 때 배출된 온실가스, 손자·손녀가 고스란히 피해 안아 [시공간으로 읽는 더위]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수백년 대기 떠돌며 지구온도 높여
1970년 325ppm→지난 6월 419ppm ↑
2030년 감축목표 2018년 대비 40%
기온 상승폭 2.0도 이하 억제 역부족
온실가스 감축목표 올릴수록 노출 줄어
감축 목표달성보다 배출 과정 중요
누적 배출량 최대한 줄이는 게 관건
"미래세대 의견도 정책에 반영돼야"
오늘날 우리가 겪는 기후변화는 온실가스가 ‘누적’된 결과다. 온실가스의 수명은 종류에 따라 짧으면 몇 주에 불과하지만, 길면 1000년에 이른다. 온실가스의 대표 격인 이산화탄소의 수명은 수십∼수백년에 이른다. 오늘 공장 가동을 멈추면 미세먼지는 금세 사라질지 몰라도, 한번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수백년간 대기에 머물며 지구 온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SSP1-1.9)에서 조차 이미 달궈진 지구 온도를 2100년 이전에 다시 떨어뜨릴 수는 없다고 전망한다.
어린 세대가 겪게 될 기후변화는 할머니·할아버지 세대부터 배출된 온실가스가 쌓인 결과다. 이 아이들은 훨씬 적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더라도 이미 부모, 조부모 세대가 내뿜은 온실가스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세대 간 불공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조부모 세대의 지구와 오늘의 지구
당연히 조부모 세대가 기억하는 ‘내가 젊었을 때의’ 여름과 2010년대에 태어난 어린이가 체감하는 여름은 같지 않다. 1970년대를 통틀어 8월 상순 낮 최고 기온이 폭염 기준인 33도 이상을 보인 건 8일(서울 기준)에 불과했다. 2010년대엔 49일이 폭염이었다. 1년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폭염을 요즘 아이들은 하루걸러 하루꼴로 겪는다. 기후변화는 밤에 더 두드러진다. 8월 상순 열대야(일 최저기온 25도 이상)가 나타난 날은 1970년대를 모두 합쳐 6일이었지만 2010년대엔 67일이었다. 이제 열대야는 특별히 무더운 밤이 아니라 보통의 여름밤을 일컫는 말이 됐다.
시간당 30㎜ 이상의 폭우도 1970년대 여름(6∼8월)엔 10년 동안 14번 쏟아졌지만, 2010년대 들어선 30번으로 늘었다. 1970년대 여름철 평균 온도는 23.7도, 2010년대는 25.4도다. 한국의 여름만 놓고 보면 ‘산업화 이전 대비 금세기 말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국제사회 목표가 무색해진다.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는 2018년 대비 40%다. 정부가 ‘야심 차다’고 표현한 이 NDC로도 2020년생이 평생 겪을 폭염이 1960년생보다 12.3배 많을 것이라는 게 빔 티에리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 교수 연구팀의 전망이다. 1970년대와 2010년대 8월 상순 폭염일수가 6배 늘어난 점에 비춰보면, 더위는 앞으로 더 맹위를 떨칠 것이란 얘기다. 현재 각국의 NDC가 기온 상승 폭을 2.0도 이하로 억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일 감축 목표를 올려 기온 상승 폭을 2도로 제한하는 데 성공한다면 한국의 2020년생이 1960년생보다 평생 겪게 되는 폭염이 8.6배 많을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수준의 NDC를 달성했을 때보다 폭염 노출 격차를 30%가량 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할 때는 2020년생의 폭염 노출은 1960년생보다 7.6배 많아 NDC 달성 시 대비 38.2%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미래 세대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선 현재 설정된 각 국가의 NDC를 넘어서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티에리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현재 NDC가 갖고 있는 야심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며 “이런 노력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미래 세대의 폭염 피해 완화에 즉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폭염의 세대 간 격차에 대한 이 연구 결과가 ‘세대 간 불평등’을 넘어 ‘세대 간 불공정’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앞 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뒤에 오는 세대가 재난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구조가 공정성에 반하기 때문이다. 티에리 교수는 “기후위기 해결은 결국 세대 간 공정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감축 경로’가 중요한 이유
1.75도로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2020년 이후 한국이 배출할 수 있는 잔여 탄소량은 35억t이다. 이 가운데 2020년과 2021년에 약 13억t을 썼다. 앞으로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한 채 한 해 6억t씩 배출한다고 가정하면 2025년엔 탄소예산 잔고가 바닥나게 된다.
기후소송을 대리하는 윤세종 플랜1.5 변호사는 “2030년 감축 목표를 달성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 우리가 총 얼마를 배출하느냐이다”라며 “끝에 가서 목표만 맞추는 식으로 접근하면서 감축 부담을 뒤로 미룰 경우 총배출량은 크게 증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아직 기후위기 대응을 세대 간 정의의 문제로 진지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후위기 당사자인 미래 세대의 의견이 온실가스 감축 등 정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뿐더러, 그 대응 노력을 그저 ‘미래 세대를 위한 시혜’ 정도로만 여기는 시각이 주류라는 게 청소년·청년 단체 측 평가다.
김보람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미래 세대’가 지금처럼 그저 공허한 구호로만 남아선 기후변화로 닥쳐올 피해를 절대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지로·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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