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절반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진단..하반기 소비 부진 '빨간불'

이재은 기자 2022. 8. 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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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경제학자 54% "스태그플레이션 초입 진입"
하반기 수출·소비 동반 둔화 우려도

올해 하반기 한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침체) 경고등이 켜졌다. 6%를 웃도는 높은 물가 오름세가 10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 경제 버팀목인 수출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장을 지탱해줄 요인이 소비인데,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반등했던 소비마저 위태롭다는 우려가 나온다.

◇ 시장 “예상보다 강한 소비, 하반기엔 꺾일 듯”

2일 경제학계와 시장에서는 올해 하반기 민간소비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2분기 한국 경제는 민간소비 회복에 힘입어 시장 기대를 뛰어넘는 0.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당초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을 0.3%로 전망했지만, 실제 소비가 훨씬 더 늘면서 0.7%를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말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면서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중 억눌렸던 소비가 분출된 영향이 컸다. 외출과 모임 급증으로 외식·숙박업 등 대면 소비가 늘어나면서 수출 둔화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살아난 것이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강력한 소비 회복이 ‘일회성 반짝 이벤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물가 상승으로 가계의 구매력이 감소한 데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늘고 주식·부동산 등 자산가격 하락해 지갑을 닫는 소비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 전문가들은 소비의 바탕이 되는 국내총소득(GDI)이 마이너스(-) 전환한 점을 주목했다. 올해 2분기 기준 실질 GDI는 교역조건 악화로 전기 대비 1%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 사태로 국내 경제가 타격을 받았던 2020년 2분기(-1.6%)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전년 동기 대비로도 0.5% 줄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에서 환율 변동이나 수출입 단가의 변화를 고려해 산출한 실질 GDI는 국가의 실질구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2분기 민간소비가 전기 대비 3% 증가하면서 전체 성장률을 견인한 데는 방역기조 완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며 “그러나 GDI가 감소했고 주가와 부동산 등이 하락하는 등 소득과 부의 효과는 늘지 못했기 때문에 2분기의 소비 호조가 하반기까지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뉴스1

◇ 한은도 “금리인상에 따른 수요 둔화 불가피”

그동안 견조한 민간소비 회복세를 예상했던 한국은행도 하반기 들어 수출과 소비의 동반 부진 가능성으로 성장 하방 압력이 커졌다는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기준금리 인상이 민간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한국은행은 ‘금리 상승의 내수 부문별 영향 점검’ 보고서에서 “지난해 8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이 시차를 두고 점차 가시화될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상하면 민간소비는 향후 1년 동안 평균 0.04~0.15% 감소한다”고 추정했다. 고용 등 다른 요인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는 가정 하에 지난해 8월부터 총 여섯 차례 기준금리를 누적 1.75%p 인상한 효과가 1년 뒤 소비를 1% 이상 둔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소비 제약은 주식·부동산 등 자산가격 하락과 이자비용 부담 가중 등의 경로를 통해 두드러질 것이라고 한국은행은 평가했다. 한국은행은 “금리 상승으로 인한 수요 둔화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금리 인상이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완화에 효과적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화물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선이 부산항으로 입항하고 있다.

◇ 경제학계 “韓 경제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초입”

경제학자들은 고물가에 수출 증가세 둔화, 소비 위축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초입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한국경제학회가 지난달 국내 경제학자 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인 54%는 “우리나라는 물가 상승과 경기 부진이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초입 단계”라고 답했다.

경제학자들은 코로나 기간 이뤄진 대규모 경기부양책 등 ‘돈 풀기’ 조치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나타난 비용 충격이 맞물리면서 물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와 한국은행도 6%를 웃도는 물가 오름세가 앞으로 2~3개월간 더 이어질 것이라고 봤고, 물가 피크아웃(정점 통과) 시점은 10월이 가장 유력하다고 봤다.

물가는 연말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 압력 확대에 따른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금리인상 가속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의 여파로 성장세가 약화되는 모습이다. 이로 인한 글로벌 교역 감소로 우리나라 수출이 타격을 받고, 성장률도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자들의 절반 가까이는 현재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2%)을 웃돌지만, 주요국 긴축의 영향으로 향후 잠재성장률을 하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곽노선 서강대 교수는 “현재 코로나 이후 회복세를 나타내던 경기가 둔화되면서 성장률 자체는 잠재성장률에 가깝지만 공급측면의 충격 (인플레이션 충격)이 지속될 경우 향후 더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일 “지금 확답하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해외 상황이 나빠지고 있어 낮은 성장률 가능성은 지켜보고 있다”며 “10월쯤 해외 자료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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