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업 피해 입고도 손해배상은 '유야무야'.. "노조 파업 남용 막으려면 몇십억이라도 청구해야"

채민석 기자 2022. 8. 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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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소 철회' 조항, 노사 협상 합의문에 단골로 등장
공장 가동 위해 노조 요구 들어주는 사측
"노조가 피해액 복구하기는 불가능.. 현실적인 액수 청구해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이 51일 만에 마무리됐지만, 쟁점이었던 손해배상 문제에 대해서는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사측은 파업으로 인한 피해가 약 8000억원에 달해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배상 능력이 없는 노동자를 상대로 한 청구는 일종의 보복수단이라고 반박한다.

정부는 위법행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예고했지만 손해배상 소송(손배소)에 대한 논의는 사측에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를 위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 입법에 나섰다. 기업이 손배소를 볼모로 노동자의 정당한 쟁의 행위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계 일각에서는 실효성이 없는 손배소 조항이 불법파업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합의를 위해 손배소를 면책하는 관행이 불법 점거 등으로 이어져 기업에 천문학적인 손실을 안긴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불법파업의 범위와 손해액 산정과 관련한 명확한 기준을 정하고, 법치주의에 대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7월 25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작업자가 진수 작업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 왼쪽이 하청지회 노조가 농성을 벌이던 독이 있던 자리다. 농성했던 선박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연합뉴스

◇ 불법파업 피해 입고도 노조 ‘손배소 면책’ 요구 들어주는 사측

‘손해배상 소송 면책’은 노조의 불법파업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요구사항이다. 불법파업으로 피해를 본 사측이 법적으로 노조에 책임을 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이를 관철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파업으로 막심한 피해를 입은 사측이 공장 정상 가동 등을 위해 노조 측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우조선해양 파업뿐 아니라 노사분규 합의 과정에서 노조 측은 대부분 ‘손배소 면책’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지난 1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 2명은 군산시 오식도동 참프레 공장 30m 높이의 저장고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며 손해배상금 철회 등을 요구했다. 이에 사측은 노조 측과 ‘139억원 손해배상 철회’에 합의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임단협 타결 과정에서도 노사는 상호 제기한 고소·고발, 손해배상 소송 등을 모두 취하한다는 내용을 합의서에 담았다. 당시 현대중공업 노조는 8일간 조선소 내 턴오버 크레인을 무단 점거했다. 같은 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광주본부 2지부 SPC지회 노조와 협상을 타결한 SPC도 노조 측이 요구한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철회·면제 조항을 수용했다.

산업계는 불법파업으로 인한 피해가 막심한 만큼 엄정한 공권력 집행과 함께 손배소 청구가 보장되고 실효성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계 주장대로 손배소 청구가 제한될 경우 불법점거 등의 파업 행위를 막기가 어려워지고, 결국 천문학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우려에서다.

반면 노동계는 노조 측을 상대로 사측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관행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이 갚기 어려운 막대한 손해배상액을 청구하는 것은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 전문가들 “불법파업 범위와 손해액 산정 기준 명확히 정해야”

전문가들은 추정 손실액보다 적은 금액이라도 손배소를 청구하는 것이 사측의 현실적인 대응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정부가 불법파업의 범위와 손해액 산정과 관련해 명확한 기준을 정해 손배소 청구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 점거 등의 행위는 정당한 쟁의 행위가 아니기에 불법파업과 정당한 파업 행위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불법행위 범위와 손해액 산정 기준이 명확해지면 노조 측의 불법파업이 남용되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는 “이번 대우조선해양의 사태를 봤을 때 명백하게 큰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에 사측에서 노조 측에 손배소를 청구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면서 “다만 손배소를 청구한다고 해도 노조가 발생한 피해를 전부 복구할 여력이 되지 않기에 손해액 산정을 몇십억원, 몇억원까지라도 최소한으로 해서 청구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 법학 교수는 “노사 분규를 해결하기 위해 파업에서 실제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하는 불법행위의 범위나 기준을 법적으로 명확히 정해야 한다”며 “객관적 불법을 저지른 노조 측에서 무조건적인 면책을 주장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고, 사측에서도 노조의 파업 등 기본권 행사를 억제하기 위해 ‘불법성’을 남용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은 “사업주가 정치적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불법파업을 일으키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파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냐. 정부가 나서서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불법 파업을 막고, 법치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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