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아] 동생이 죽은 지 보름 만에 같은 이름의 동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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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작은 관에 누워 희미하게 숨을 몰아쉬는 강이"를 상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변하는 건 없다.
어느새 강이로 불리는 고아는 강이의 방에서 강이의 옷을 입고 지낸다.
내가 없어도 엄마는 또 다른 아이에게 내 이름을 붙여주고 '새 가족'을 꾸릴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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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나 하나 없다고 신문이 안 나오진 않잖아." 남편과 각자 업무 일정이 적힌 달력을 보며 여름 휴가 날짜를 조율하다 짜증 섞인 말이 툭 나왔다. 내뱉고 보니 참 맞는 말이다. 문득 서늘한 기운이 돈다. '나는 조직에서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는 불안은 그렇게 불쑥 찾아온다. 그럴 땐 다른 일을 하면 된다는 무모한 자신감으로 당장의 불안을 외면하곤 한다.
그런데 일터가 아닌 가족과 같은 사적 공간에서 내가 대체 가능하다고 느낀다면 어떨까. 문학계간지 에픽 8호에 실린 나푸름 작가의 '매장된 시신은 땅에 유용한가'를 읽으면 그런 상상을 해 보게 된다.
작품의 배경은 태어나기 전부터 원인 불명 바이러스로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는 일이 잦은 세상이다. 정부는 성년이 되기 전 아이가 사망하면 같은 나이의 건강한 아이를 부모에게 제공하는 산하 보험을 운영하기에 이른다. 부모는 새 아이를 통해 치유받고, 돌봄이 필요한 고아가 넘치는 상황도 타개할 수 있다는 취지다.
주인공인 고등학생 '윤산'은 아홉 살 동생(윤강)을 올봄에 잃었다. 그리고 보름 후 동생과 같은 나이의 고아가 집에 왔다. "이제 한 가족"이라는 엄마의 일방적 통보를 받고 주인공은 혼란에 빠진다. "작은 관에 누워 희미하게 숨을 몰아쉬는 강이"를 상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변하는 건 없다. 어느새 강이로 불리는 고아는 강이의 방에서 강이의 옷을 입고 지낸다.
떠난 동생에 대한 그리움, 대체 동생에 대한 미움, 엄마에 대한 원망 등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주인공을 가장 힘들 게 한 건 무서움이다. 동생처럼 나도 그렇게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 내가 없어도 엄마는 또 다른 아이에게 내 이름을 붙여주고 '새 가족'을 꾸릴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답답한 주인공이 속내를 유일하게 털어놓은 동급생 '김주영'도 사실 '대용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 공포는 더 커진다. 자신과 자신이 미워했던 고아가 다르지 않은 사람이란 걸 깨달으면서다.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미워하는지 궁금해서" 주인공에게 접근했다는 김주영의 말을 듣자 괴로움은 더해진다. 자신의 눈치를 보는 듯했던 고아를 떠올리며 "그 애가 나를 미워할지, 아니며 무서워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두 가지 감정 모두 내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이 현실이 본인과 동생은 물론 하루아침에 윤강이 된 고아에게도 부당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그 부당함은 유일한 존재로서 각자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반감일 것이다. 작품 밖 현실에는 산아보험처럼 망자를 다른 이로 대체하는 억지스러운 제도는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을 대체 가능한 자원이나 수단으로 보는 일은 우리 일상에서도 벌어진다. 소설을 읽은 오늘만큼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아낌없이 응원하고 싶어진다. 존재만으로 존엄하다는 믿음에서 자라난 자존감이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니까.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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