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법안 절반 국회에 막혀.. "공무원 자부심? 그건 옛말"
정부제출 법안 통과비율 급락.. 19대때 73.5% →지난 2년 53%
공무원 이직이유 1위 '낮은 보수' 주52시간에 워라밸 장점 사라져
국가경쟁력 '정부 효율'도 후퇴.. 한국 36위, 작년보다 2계단 하락
“과거에는 2~3일에 하나씩 법도 만들고, 시행령도 만들었다. 밤새 일해도 신바람이 났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전직 장관 A씨)
공직 사회의 활력이 떨어진 것은 정치권의 힘이 커지고 국회 입법 과정이 중요해져 정책 주도권이 행정부에서 국회로 넘어간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 경제 부처의 차관보(1급)는 “법안 국회 통과를 위해 의원실을 돌면서 부탁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국회에 갈 때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관료로서 자부심에 금이 가는 날이 많다”고 했다.
국가 주도 개발 시대가 저물고 민간 중심으로 분위기가 바뀌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국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공무원의 역할도 여전히 중요한 만큼 이들의 경쟁력을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직 사회 무기력증 확산
정부 제출 법안보다 의원 발의 법안이 늘어나고, 여당과 하는 당정 협의에서 부처 장관이 사실상 배제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공무원들의 어깨는 처지고 있다. 야당은 정책의 중요도보다 정치적 상황이나 유불리에 따라 입법 속도를 늦추는 일이 빈번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서 과거의 무사안일이나 복지부동 등과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기력증이 공직 사회에 퍼지고 있다.
법안 제출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4대 국회만 해도 의원 발의(321건)보다 정부 제출(581건)이 많았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의원 발의(1144건)가 정부 제출(807건)을 역전한 뒤 계속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현행 21대 국회는 지난 2년간 의원 발의(1만4831건)가 정부 제출(491건)의 30배를 넘어섰다.
그나마 정부가 낸 법안의 국회 통과 비율(처리율)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19대 국회(2012~2016년)는 73.5%였는데, 지난 2년간은 53%로 낮아졌다. 정부 제출 법안은 절반 정도만 국회를 통과한다는 뜻이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은 아예 정부의 시행령을 국회가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세제 개편안 등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의 발목을 잡겠다는 것이다. 한 서기관은 “국회에서 다 법으로 할 테니 공무원들은 그냥 집행만 하면 된다는 발상이 황당하다”고 말했다.
◇직무급 도입 등으로 보상 높여야
활력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 하위직 공무원들은 낮은 보수를 거론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무원 4100여 명을 설문 조사한 ‘2021년 공직 생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직 의사가 있다는 공무원이 응답자의 33.5%에 달했다. 이직 이유로는 ‘낮은 보수(34.7%)’가 가장 많았다. ‘가치관·적성에 맞지 않아서’(14%), ‘과다한 업무’(13.5%) 등 순이었다. 낮은 보수는 조사를 시작한 2017년 이래 4년 연속 이직 이유 1위에 올랐다. 특히, 5년 차 이하 공무원은 절반 이상(51.4%)이 낮은 보수를 지목했다. 보수는 좀 낮아도 민간 기업과 달리 정시 퇴근이 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못해도 공무원의 장점 중 하나였는데, 주 52시간 근로가 민간 기업에도 정착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공무원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보수 체계 등을 개편해 공무원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추진되지만 내부 반발에 막히고 있다. 직무의 난이도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는 직무급제 도입은 지지부진하다. 지난 3월 행정안전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직무·성과를 반영한 보수 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보고했다고 보도된 뒤 논란이 일자 다음 날 위원회는 이를 부인했다. 2019년부터 매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됐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민간 전문가는 “궁극적으로 직무급제로 가야겠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며 “차라리 전문가를 용역 계약 같은 형식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 경쟁력 평가 결과, 한국은 정부 효율성에서 작년(34위)보다 두 계단 떨어진 36위를 기록했다. 인프라(16위), 경제 성과(22위), 기업 효율성(33위) 등 다른 평가 부문보다 순위가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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