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기준 중위소득과 끼니 걱정

김향미 기자 2022. 8. 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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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지우는 ‘은강구’의 낡은 빌라에 산다. 이 빌라 1층엔 당뇨를 앓는 아버지와 발달장애 아들이 살았으나 아버지가 ‘아들이 기초생활수급권을 받게 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는 당뇨 합병증에 일을 나가지 못했지만 근로가 가능한 병이라는 이유로, 아들은 장애등급이 높지 않아서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 3층엔 보육시설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 남매가 사는데, 50만원이 안 되는 기초생활수급비로는 학비·생활비가 빠듯하지만 수급권을 박탈당할까봐 아르바이트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지우 친구인 강이는 외할머니와 단둘이 사는데, 중학교 때 수급권을 신청했지만 부양의무자인 외삼촌의 재산이 많아 2년 만에 부정 수급자로 걸렸다고 한다.

김향미 정책사회부 차장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쓴 김중미 작가의 근작 <곁에 있다는 것>에 나오는 이야기다. 소설이지만 은강 이웃들의 이야기는 ‘다큐’에 가깝다.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만민공동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었다. 수급자 1인 가구의 올해 생계급여가 58만원인데, 밥값이 8000~9000원 하다보니 한 끼를 라면으로 때우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기준 중위소득’을 올리라고 주장했다.

기준 중위소득은 국민 가구소득의 중간값으로,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로 꾸려진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가 매해 결정한다. 기초생활보장제부터 76개 복지사업의 기준, 그러니까 ‘복지선’이다. 그날 중생보위는 2023년도 기준 중위소득을 4인 가구 기준 전년 대비 5.47%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수급자의 70% 이상인 1인 가구는 월 4만원가량 올랐다.

기획재정부의 입김에 매년 기준 중위소득은 산출원칙에 따른 인상률보다 낮은 인상률을 보였다. 이번엔 원칙을 지켰지만 단체들은 “사실상 삭감”이라고 지적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소득 감소 등을 고려하면 어떤 이의 가난은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만 25세 미만 긴급복지 지원현황’ 자료를 보면 ‘신청인은 퀵서비스 일을 하였으나 코로나19 및 경기불황으로 소득이 현저히 줄어들어 가구의 건강보험료가 7개월 미납됨’과 같이 적힌 사례가 적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꺼운 복지’를 공약하면서 생계급여 선정기준을 기준 중위소득의 30%에서 35%로 확대하고, 주거급여는 46%에서 50%로 복지 대상자를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이번 중생보위 회의에선 내년도 주거급여만 47%로 1%포인트 확대했다. 주택 등 재산 기준 때문에 실질적 소득이 없는데도 수급 대상에서 빠지는 등의 사각지대 해소안도 나오지 않았다.

복지부는 이번에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 산출원칙을 지킨 것만으로도 ‘두꺼운 복지’ 취지를 살렸다고 강조했다. 원칙대로 했을 뿐, 두꺼운 복지로 나아가진 못했다. ‘은강’은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 된 ‘은강’과 같은 지명이다. 지우는 40여년 전 소설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고, 배를 곯지 않는다고 가난이 없어진 건 아니라고 말한다. 최근 식당 밥값이 올라 결식아동들이 편의점에서 한 끼를 때운다고 한다. 우선 끼니 걱정은 덜어줘야 하지 않을까.

김향미 정책사회부 차장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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