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15> 해양크루즈 전문가 황진회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2022. 8.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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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산업은 블루오션, 준비하는 자에게 활짝 열린다"

- 머지않아 크루즈 붐 일어나고
- 연관산업 이끈다고 확신하는
- 황진회 KMI 부연구위원

- 세계 조선 1위·해운 7위 한국
- 관련 관광업은 여전히 미흡
- 국제적 규모 크루즈선 필요

- 세미나 개최·네트워크 조직 등
- 韓 크루즈 산업 활성화 헌신

바다는 때로 낯설다. 17세기 지도 ‘천하도’에서의 바다 너머 삼수국(三首國)이나 일목국(一目國) 여인국(女人國)만이 아니다. 1500여 개 객실에 카지노 연회장 수영장 등을 갖추고 스케이팅과 골프 암벽등반을 즐기는 크루즈선도 한국인에겐 낯설다. 섬 빙하 아마존을 찾아 나서는 이색여행에 자동차 신차발표회, 아이돌 공연, 패션쇼 등을 펼치는 ‘테마 크루즈’도 먼 나라 얘기다. 크루즈라면 대뜸 ‘타이타닉호’ 침몰이나 2020년 일본에서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코로나 감염부터 떠올린다.

불 꺼진 부산 영도구 동삼동 국제크루즈터미널을 배경으로 서 있는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위원은 머잖아 외국 크루즈선이 쇄도할 것이라 믿고 있다. 김정하 교수 제공·국제신문 DB


■국내 크루즈관광 현주소

그래서 세계 조선 1위, 해운 7위인 한국의 크루즈 관광객 수는 중국은 물론 GDP(국내총생산)가 낮은 대만이나 말레이시아보다 적다. 2900만 명의 해외여행으로 서비스수지 적자가 염려되던 2019년 아웃바운드 크루즈관광의 실제 수요는 5만 명에 불과했다. 2016년에는 외국 크루즈선으로 266만 명의 인바운드 관광객이 내한했지만 부산에서는 국제시장과 해운대를 안내하고 ‘반(半)계탕’을 식사로 내놓은 저가 관광이 고작이었다.

나름대로 크루즈를 육성하려는 노력도 없진 않았다. 2004년엔 ‘팬스타드림호’가 주말에 연안크루즈관광을 선보였고 2012년에도 일본 규슈를 돌아오는 ‘클럽하모니호’가 중국 항로가 열리지 않은 악조건에도 11개월간 운항했다. 2015년 ‘크루즈 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에는 전용 항만과 터미널이 건설되고 전문인력 교육도 시작됐다. 2016년 크루즈 방문객 100만 명이 찾은 제주는 ‘아시아 최고 기항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이엔드 관광 보장·후방연관효과

2019년 11만 4000t급 이탈리아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호’가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노선을 운항할 당시 모습.


미래에는 어떨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황진회(54) 부연구위원은 단연코 ‘크루즈 붐’이 일어날 것이라 낙관한다. “크루즈는 행복과 편의, 재미 외에 웰빙과 힐링 등 하이엔드(high end) 관광을 보장한다. 관광객과 승무원에 연구자까지 행복해지는 산업이다.” 일찍이 그리스와 동남아, 중국 등에서 행복에 겨운 크루즈 여행객들을 목도한 그였다.

국내 크루즈 전문가들의 앞줄에 서 있는 황 위원은 연구를 시작한 2006년 이래 매년 1, 2회씩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 중국 상해와 북경, 프랑스 마르세이유,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을 찾아가 법과 제도 시설 정책을 조사했다. 일본 국토교통성과 대만 항만청, 싱가포르 관광청을 방문해 크루즈선 유치와 국제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틈틈이 ‘크루즈 관광산업 발전기반 조성방안’과 ‘크루즈산업 육성 종합계획’ 등 프로젝트 15건을 수행했다. 연구가 진척될수록 그는 크루즈에 조선과 고용 선용품 관광 쇼핑 엔터테인먼트 등 연관산업을 이끄는 힘이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승객 2000명이 소비하는 하루치 식자재만도 웬만한 마트 1일 판매량에 육박해 후방연관효과도 탁월했다.

■학창 시절, 보이스카우트와 등산

미국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 소속 호화 크루즈선인 레전드호의 내부.


오지 탐험과 다름없는 황진회 위원의 연구 여정은 초등학교 시절 보이스카우트 캠핑과 대학 재학 중 지리산 등반의 연장이었다. 경남 고성읍에서 황종래와 허점년의 2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고성문화원 사무국장인 부친과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 슬하에서 반듯하게 자랐다. 다만 향토 문화에 조예가 깊은 부친은 공무원이 되길 바랐지만 그는 창공을 누비는 파일럿을 꿈꾸었다. 그 꿈은 경상대 경제학과에 진학해 사회과학과 역사학을 섭렵하면서 연구자로 바뀌었고 1996년 경상대 대학원을 졸업한 그를 해운산업연구원(KMI)으로 이끌었다. 연구실에서 장좌불와(長座不臥)가 주특기인 황 위원은 주전공인 해운 연구로 국무총리상과 해양수산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이어 그는 남북 해양협력과 국내 최초의 북극정책, 크루즈산업 등으로 연구 영역을 넓혔다. 딸마저 TV뉴스로 황 위원의 북극연구 보도를 보고야 아빠 업무를 짐작할 정도로 그의 연구 분야는 생소했고 크루즈가 특히 그랬다.

■카지노 등 풀어야 할 과제 산적

전문가들도 아직 국내 크루즈산업은 갈 길이 멀다고 본다. 한국의 크루즈 전용 터미널 5개는 일본의 100개, 중국의 30개와 비교 자체가 어렵다. 게다가 현행법에 따른 내·외항 구분으로 크루즈항로 지정이 어렵고 면세품과 면세유 허가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승무원 하선 제약과 신설 크루즈선 카지노 불허, 승객 무비자 입항 제한도 풀어야 할 과제다. 전문인력 양성은 승선 근무에 국한된 데다 국내 크루즈선 부족으로 승선 실습마저 힘든 형편이다. 지자체와 관련 업계의 관심도 적고 크루즈 업무를 담당하는 해양수산부에도 이를 전담하는 별도 조직은 없다.

전문가들이 무엇보다 안타까워하는 건 국제적 규모의 크루즈선 보유회사가 국내에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선가(船價) 덤핑으로 힘들어하는 국내 조선업계에는 고부가가치 선박 크루즈선 건조가 블루오션이라 주장한다. “크루즈선 건조 경험이 부족한 조선사들로선 자신감과 거액의 투자 모두 부담스럽다. 정부가 크루즈를 육성할 의지가 있다면 조선사를 위한 후순위투자나 보증에 나서야 한다.”

코로나사태 직전만 해도 세계 크루즈선은 매년 15척씩 늘어나고 관광객도 164만 명씩 증가하던 참이었다. 조만간 코로나가 안정되면 아웃바운드 관광객 실제 수요 15만 명과 인바운드 관광객 40만 명 달성은 무난할 전망이다. 때맞춰 글로벌 크루즈 선사가 홍콩, 싱가포르를 모항으로 아시아에서의 운항 횟수를 늘릴 계획이다. 크루즈 체험을 원하는 연령층이 다양해지고 각종 할인제도로 승선 요금이 줄어드는 것도 청신호다. “크루선에는 원하는 모든 게 갖춰져 있고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런 점들은 한국인의 여행 스타일과 잘 들어맞는다.” 크루즈관광의 매력에 대한 조성철 한국해양대 교수의 견해다.

미래를 낙관하는 만큼 황 위원은 바쁘게 움직였다. 코로나 직전까지는 마이애미 크루즈 콘퍼런스 참가와 일본 국토교통성 크루즈 관계자 교육, 한·중·일·러 크루즈 전문가 협력체를 조직하느라 뛰어다녔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아시아 크루즈 리더스 네트워크에서 발표와 중·일 크루즈 방역체계 조사를 해냈다.

■㈔한국크루즈포럼 세미나 주도

황 위원의 자산은 해양정책 통합연구기관인 KMI에 대한 신뢰와 그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이다. 더불어 2018년 발족 이래 자신이 운영위원장을 맡아온 ‘㈔한국크루즈포럼’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손재학 전 해양수산부 차관을 대표로 조성철 한국해양대 교수, 주영렬 충남대 교수, 윤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회원인 이 모임은 2021년에만 온·오프라인 세미나를 11회나 개최했다.

크루즈선을 끌어오는 건 예인선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1977년부터 9년간 방영된 드라마 ‘사랑의 유람선’이 크루즈 붐을 일으켰다. 비록 세계무대에선 후발주자지만 한국도 미래의 크루즈산업을 위한 준비만은 열심이다. 황진회 위원은 영화를 비롯한 노래, 춤 등 K-컬처를 한·중·일 운항노선과 연계한 웅대한 ‘동북아 지중해 크루즈’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심상진 경기대 교수 역시 지정학적 강점을 지닌 한국이 크루즈관광의 최적지로 꼽힐 것이라 장담한다. “언젠가 부산에서 금강산, 원산,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노선이 열린다면 전 세계 크루즈선이 몰려올 것이다.”

올 여름에도 황 위원은 크루즈산업의 특성에 맞게 1년 6개월 후에나 실현될 계획을 세우느라 쉴 짬이 없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시기를 놓칠까 염려해서라 한다. 바다에서는 물때를 읽으며 준비하는 사람이 가장 바쁜 법이다.

▶도움 말씀 주신 분 = 손재학 전 해양수산부 차관, 조성철 한국해양대 교수, 심상진 경기대 교수, 윤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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