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과 삶] 늦어도 너무 늦은 노란봉투법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2022. 8. 2.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51일간 파업은 노사 합의로 끝났지만, 사측에서는 70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조합의 정당한 파업권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 같이 그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노동자 대다수의 파업에는 노동3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33조나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에 대한 면책 조항을 담고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보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손해를 입혔으니 배상해야 한다는 민법 제750조와 제760조를 우선 적용해온 게 우리나라의 관행이었다. 사실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제기와 가압류의 악폐는 많이 알려져왔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에 가해지는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한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2014년 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난 것을 본 배춘환씨가 한 언론사에 4만7000원을 노란봉투에 담아 보내면서 모금 캠페인을 제안했고, 그 뒤 112일 동안 약 4만7000명의 시민이 참여해 14억7000여만원을 모았다. 그때 만들어진 시민단체가 ‘손잡고’였고, 19·20·21대 국회에 법안이 발의되었다. 하지만 19대 때 관련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법안 심사를 단 한 차례 가진 이래로 매번 발의된 법안들이 폐기되었다. 노란봉투법의 입법운동은 손잡고와 손배가압류 당사자들만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도, 정의당도 이 법의 입법을 다짐하고 나섰다. 시민단체들도 나서고 있고, 손배가압류의 당사자인 금속노조와 민주노총도 나서고 있어 반갑다.

19세기 유럽 수준 노조탄압에 참담

그동안 노란봉투법은 손배가압류를 당한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다음에야 반짝 관심을 끌었다. 그때는 정치권도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법의 입법에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재임기간에도 국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않았고, 문 대통령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국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취하라는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에 대해 기업들이나 국가가 취하는 태도는 마치 18세기 후반~19세기 중반의 유럽을 보는 것 같다. 그때 유럽 각 나라에는 프랑스의 ‘르 샤플리에법’과 같은 단결금지법이 수백개씩 있었다. 이런 법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조직부터 불법화했다. 그러다 1824년 영국 의회가 단결금지법을 폐지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노동조합은 합법적 지위를 얻었고, 이후 유럽이 사회복지국가로 진입하는 데 노동조합의 역할이 지대했다.

한국에서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35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노동조합을 볼온시하고,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에 대해 업무방해죄 등을 동원해 형사처벌하고, 노동자들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수십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왔다. 검경은 늘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에 대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왔고, 법원은 손해를 입혔으니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기업이 요구하는 임금가압류까지 인용해주면서 노동조합을 탄압해왔다. 손배가압류를 당한 노동자들은 고통 속에서 노동조합을 탈퇴하거나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고, 가정은 파괴되기 일쑤였다. 손배가압류를 당한 노동자들은 “법은 정의롭다고 알고 살았는데, 법마저 나에게 죽으라고 하는 것 같다”며 그 고통을 호소해왔다. 그동안 손해배상 가압류가 어떻게 악용되어 왔는지는 손잡고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만든 <아카이브 33.3>과 언론 기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야권의 입법 다짐에 일말의 기대감

최근 손배가압류는 대우조선해양의 하청노동자들처럼 어디 기댈 곳 없는 노동자 최하층으로 향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파업이 끝난 직후 군산의 참프레 노동자들은 스스로 농성을 풀었고, 10명의 조합원들은 해고를 받아들였다. 사측이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100억원의 손해배상으로 압박했고, 이를 두려워한 노동자들이 조합을 탈퇴했기 때문이다. 손배가압류는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고, 심지어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언제까지 19세기 유럽 수준의 노동조합 탄압을 이어갈 것인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하반기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입법되어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