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40도 영국’에서 생각한 것
여름방학을 맞아 작업을 하러 영국 옥스퍼드에 왔더니 불청객이 맞았다. 40도 폭염이다. 유학 시절 알던 영국이 맞나 싶다.
푸른 양잔디로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의 정원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식물의 화학 반응 데이터를 활용한 미디어 작품(‘들리는 정원’)을 하고 있는 나는 식물에 예민하다. 시체처럼 나뒹구는 잔디를 밟을 때마다 자연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 영국은 아무리 작은 집도 정원은 있지만 에어컨 있는 집은 찾기 어렵다. 에어컨 나오는 레스토랑과 커피숍마다 무더위에 피신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래도 영국인은 투덜대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때 폭격 속에서도 지하 방공호에서 소설과 시를 읽었다. 줄 서기를 취미 생활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특히 날씨에 대해서는 절대 불평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한번은 옥스퍼드에 있는 각국 친구들과 정원에서 파티를 한 적이 있다. 갑자기 비가 내리자 제일 먼저 후다닥 일어난 사람들이 한국인이었다. 그것도 접시와 와인 잔을 무사히 들고 말이다. 역시 민첩하고 위기에 강한 민족이었다. 끝까지 비 맞으며 식사하는 서너 명이 있었다. 모두 영국인이었다. 비 맞으며 태연하게 스테이크를 썰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런던 사람은 하루에 4계절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아침에 봄이었다가 점심에 여름, 저녁에는 가을이 왔다가 밤에는 겨울이 된다고 한다. 이런 영국인에게도 이번 무더위는 견디기 어려운 모양이다. 2차 대전 중 나온 그 유명한 슬로건 ‘Keep calm and carry on(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을 패러디한 ‘Keep cool and carry on(시원하게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그저 ‘평정심’에 기댄 채 넘길 수 없는 수준이 됐음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이다.
느닷없이 맞닥뜨린 영국의 폭염 속에서, 나는 작업실에 앉아 자연의 절규를 듣고 있다. 그래도 말하고 싶다. ‘Keep creative and carry on(창의성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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