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39] ‘선풍기의 조상님’
이 세상 모든 선풍기의 조상님 같은 이 제품은 독일의 산업디자이너이자 기업정체성(CI) 전문가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1868~1940)의 작품이다. 사실 당시에는 ‘산업디자이너’라는 직종은 물론이고 ‘CI’라는 개념도 없었다. 베렌스가 이들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미술대학을 나왔지만 화가로서는 변변치 않았던 베렌스는 1907년 전자기기 제조업체 아에게(AEG)의 예술자문을 맡으면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영미에 비해 산업화에 뒤처졌던 독일에서 1883년 설립돼 전구와 엔진 등을 생산하던 아에게는 빠른 속도로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따라잡았다. 이후 가전제품을 선보였지만, 세련된 이미지 없이 품질만으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었다. 베렌스는 신의 한 수였다. 그는 벌집 모양의 육각형에 글자를 하나씩 넣은 회사 로고를 시작으로 제품 카탈로그 디자인에 열정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아에게 서체를 개발하여 모든 홍보물에 일관성을 부여하고 다른 회사와 확실히 차별화했다. 그의 디자인 원칙은 무의미한 장식 없이 기능에 완벽히 부합하는 정확하고도 단순한 형태였다. 사용자 친화적이면서 동시에 효율적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생산자 친화적인 가치 또한 아에게의 혁신을 주도했던 베렌스의 철학이었다. 그는 서체와 로고 같은 작은 데서부터 선풍기와 주전자 등 제품 디자인과, 공장을 비롯한 대규모 건축까지 주도하면서 ‘아에게스러운’ 단순성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묵직한 검은 본체, 반듯한 네 개의 황동 날개, 여덟 개의 살이 달린 둥근 커버는 자로 잰 듯 반듯해서 안정적이면서도 아름답다. 물론 요즘 같은 무더위에 선풍기는 존재만으로도 매우 아름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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