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중종과 홍도화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2022. 8.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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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닫혀 있던 청와대가 개방되니 연일 관람객으로 넘쳐난다. 주말은 물론 평일 아침부터 경복궁 담장을 따라 성지 순례하듯 수많은 사람이 몰려간다.

이런 민심에 부응하려는 것일까. 정부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사례로 청와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이라 하니, 일제강점기 경복궁 전체를 베르사유 궁전과 흡사하게 바꾸려 했던 계획이 떠오른다. 1916년 일제는 경복궁 전체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도쿄의 히비야공원을 본떠 총독 관저와 야외음악당, 분수대 등 부속 공원을 계획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유럽풍 정원 양식을 그대로 도입하려 했다. 전체 배치도가 마치 베르사유 궁전 정원을 연상시키는 공간 계획은 다행히 실행되지 못했지만, 상세 도면은 지금까지 전해진다. 또한 일제는 조선물산공진회, 조선박람회 등을 개최하며 경복궁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적도 있었다.

청와대 터는 본래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창덕궁 후원처럼 왕이 휴식을 취하거나 연회를 베풀고, 과거시험 장소로도 쓰였다. <영조실록>에는 경복궁 후원에 왕실의 태(胎)를 묻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경복궁 후원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한 것 중 하나는 <중종실록>이다(중종 32년 3월14일). 중국 사신을 맞아 경회루에서 잔치를 베푼 중종은 사신과 후원을 산보하며 취로정, 만경대, 충순당 등 정자에 머무르면서 꽃구경을 하였다. 후원에 도착한 중종은 사신의 권유로 익선관에 홍도화(紅桃花)를 꽂고 주연을 베풀었다. 시절이 봄이었으니, 꽃들도 앞다투어 피어났다. 실록에는 홍도화뿐 아니라 출단화(황매화)와 옥매화 등 봄꽃들이 수놓은 후원의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기술되어 있다. 중종은 꽃이 만발한 후원을 사신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이제 역대 왕과 대통령의 숨결이 남아 있던 경복궁 후원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일제강점기에 만신창이가 되었던 경복궁은 지금 복원 중이다. 경복궁은 후원이 함께 복원되어야 비로소 복원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복합문화공간계획도 좋지만, 그 땅이 품고 있는 중첩된 역사의 켜를 되살펴 긴 호흡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왕실의 태가 묻혔고 중종이 거닐던 경복궁의 후원을 민의 수렴 없이 급작스레 전시와 공연장으로 바꾼다면, 740년 넘게 후원의 역사를 지켜본 수궁 터의 주목(朱木)도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다. 중종이 익선관에 꽂았던 홍도화가 혹시 후원 어디엔가 아직도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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