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바이든 "생큐 토니"에 숨은 채찍

이재철 2022. 8. 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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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국 수출 통제가 당신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14나노미터(㎚) 이하 장비의 대중국 수출이 제한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를 전적으로 따를 준비가 돼 있다."

지난달 26일.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회사 중 하나인 미국 램리서치의 최고경영자(CEO) 입에서 놀라운 정보가 터져나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고자 반도체 장비 수출을 제한해온 건 주지의 사실. 그런데 팀 아처 램리서치 CEO는 이날 2분기 실적발표 자리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14㎚ 이하'라는 구체적 기술 수출 제한 지침을 내렸음을 공개했다.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 사양까지 제한하는지를 확인해준 최초의 미국 기업 증언이었다.

아처의 발언이 확인되자 당장 대만 매체들이 들썩였다. 세계 최고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기술 난도가 떨어지는 14㎚ 장비까지 제한한다는 것은 TSMC의 중국 공장 첨단화 계획에 치명적 장애가 될 것이라는 염려였다. 반도체 공정은 숫자가 작아질수록 첨단 사양임을 뜻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세계 최초로 3㎚ 공정 양산을 시작했다. 14㎚ 사양부터 규제한다는 건 거칠게 말해 '퇴물 장비'도 중국에 수출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미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공장에 네덜란드 ASML의 첨단 장비를 들여오려다 미국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이렇듯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유럽에 반도체 소재·장비를 의존하는 우리 기업의 급소를 찌르고 있다. 최근 백악관에서 공격적인 대미 추가 투자 계획을 밝힌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생큐 토니"를 연발하며 손을 흔들던 그의 연출력은 채찍을 숨기고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미국 정치의 섬뜩한 일면이다. 그는 반도체 '칩4(미국·대만·일본·한국)' 동맹에 한국의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 땅이 아닌 미국에 최첨단·초거대 반도체 투자 비전을 내놓는 삼성·SK의 행보에서 정부는 정밀한 국익 계산을 시작해야 한다. 동맹의 가치가 소중해도 국익에 우선할 순 없다.

[디지털테크부 = 이재철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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