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떠나기 전 책읽기
서울에 살기 전 책으로 이미 서울을 배웠습니다.
박완서 소설 ‘목마른 계절’을 읽으며 주인공 가족이 전쟁통에 서울로 피란 와 처음 정착한 현저동을 머릿속에 그려보았고,
엇갈린 운명의 쌍둥이 자매 이야기를 그린 김내성 소설 ‘쌍무지개 뜨는 언덕’을 읽으면서
책에서 부촌(富村)으로 묘사된 혜화동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 했었지요.
지금도 천호역 방향 지하철 5호선을 기다릴 때면
어릴 적 읽은 동화책의 등장인물이 택시를 잡으며 “천호동!”을 외치던 장면을 떠올리고,
명동에 나갈 때마다 아버지와 미도파 백화점에 화구(畵具)를 사러 가던 어느 소설 속 소녀를 생각합니다.
책으로 읽은 서울의 곳곳이 마음 속에 굳건한 이미지로 자리잡아서,
마침내 서울에 살게 되며 마주한 그 모습이 오래 그린 마음 속 풍경과 어긋나 실망한 적도 있습니다.
상상이란 대개 현실보다 아름답기 때문이겠지요.
지난주 Books는 휴가 특집으로 ‘국내 여행 떠나기 전 읽으면 좋을 책’을 소개했습니다.
맛집이나 관광지 정보 실린 여행가이드가 아니라
그 지역에 대한 심상이 묻어나는 소설, 시, 에세이 위주로 꾸몄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휴가지에 도착하기 전 책을 읽으며 그 고장의 분위기와 정취를 감지하고,
저마다의 마음 속에 구축한 지도를 길잡이삼아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설악산 봉정암, 순천의 와온 바다, 제주의 닭엿… ‘진짜 로컬’들이 책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경기도로 휴가갈 건데 왜 경기도는 빠졌냐’ 서운해하시는 분들껜
인천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한 오정희 소설 ‘중국인 거리’나
김훈의 ‘남한산성’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양평 인근서 머무신다면 황순원의 ‘소나기’도 좋겠죠.
“난 보랏빛이 좋아!”라고 말하던 분홍 스웨터 차림의 소녀, 그립지 않나요?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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