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16] 여행지에서 좋은 냄새 기억하고 돌아오기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 8.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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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감염으로 ‘후각 기능 이상’을 경험한 이가 상당히 많다. 대체로 회복되지만 불편함이 꽤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 완치 뒤 후각은 돌아왔는데 매캐한 냄새가 올라온다는 경우가 한 예다. 맛을 느끼는 데 후각도 중요하다. 입에 넣기 전 코에서 느끼고, 씹어 넘길 때 구강에서 느끼는 향이 맛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후각에 문제가 생기면 식도락(食道樂)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이유다.

후각은 정서적 기억과도 밀접하다. ‘전쟁 트라우마’ 연구에서 전투 기억과 연관된 ‘디젤유 향’이 ‘악취가 나는 화학물질 향’보다 두려움과 연관된 뇌 영역의 혈류를 더 증가시켰고, 부정적 감정도 강화했다는 결과가 있다.

특정 냄새 때문에 과거의 불편한 기억이 떠오르는 경우, 현재로 돌아오게 해주는 냄새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면 ‘커피 원두 향’을 강하게 들이마시며 그 향을 느끼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냄새가 트라우마 기억을 유발할 수도 있고, 반대로 트라우마 기억 스위치를 끄는 역할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치열하게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 시간에 즐기는 커피 한 잔이 스트레스 기억을 커피 향으로 완화시키려는 힐링 활동인 셈이다. 커피에 향이 없다면 이렇게 우리가 열심히 마실까 싶다.

후각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게 하는 ‘내비게이션’ 기능에도 영향을 준다. 시각 정보만이 아니라 그 장소의 냄새를 함께 기억한다는 것이다. 후각 기능 저하가 치매의 초기 증상인 경우가 있다. 후각이 떨어지는 것은 공간 기억력 저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후각 기능과 공간 기억력이 뇌 안에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는 지금 가는 방향이 사막인지 해안가인지 판단하기 위해선 후각의 도움이 필요했다. 바다가 보이기 전, 파도 소리가 들리기 전에 바다의 냄새는 맡을 수 있다. 사막을 피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기에 후각은 중요한 길 찾기 정보였다. 그만큼 후각이 여러 냄새를 구별할 수 있게 발달했고, 지정학적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과 신경망으로 묶였다는 추론이 있다.

바캉스 시즌이다. ‘여행지에서 좋은 냄새를 기억하고 돌아오기’를 권유해 드린다. 바다나 강의 냄새일 수도 있고 나무나 모래의 냄새일 수도 있다. 그 후각의 기억이 행복하려면 여행의 기억도 좋아야 한다. 좋은 향이 가득한 바캉스 기억을 담뿍 담는 이번 여름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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