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전쟁' 재클린, 사별한 전남편 존 F. 케네디 동생과 결혼하려 한 사연?

이소연 2022. 8. 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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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케네디의 다사다난했던 삶이 소개됐다.

iMBC 연예뉴스 사진

8월 1일 방송된 MBC에브리원 ‘장미의 전쟁’에서는 존 F. 케네디의 아내였던 재클린 케네디의 삶을 조명했다.

재클린 케네디는 케네디와 교제하기 전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맨과 연인이었다. 이후 친구의 연회에 초대받은 그녀는 연회장에서 존 F. 케네디를 만나게 됐다. 그녀는 그를 만나고 미국을 품고 싶다는 큰 꿈을 갖기 시작했다.

이듬해 초봄, 재키는 약혼남과 파혼하고 존 F. 케네디와 교제를 시작했다. 당시 케네디는 젊고 쾌활한 독신 상원의원이었으며 여성 지지층도 확고했다.

위기를 느낀 재클린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바로 존 F. 케네디의 비서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정치적 도움을 주며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케네디의 비서가 된 그녀는 돌연 1개월 출장을 떠나며 케네디가 자신의 공백을 느끼게 했다. 결국, 케네디는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재클린에게 전화해서 유선으로 청혼하고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케네디의 바람기가 문제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유세 기간, 남편의 스캔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바람기를 모른 척 했다. 아들을 꼭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었던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 또한 자기 며느리를 불러서 "바람기를 무시해 달라"며 회유하고 두둑한 생활비를 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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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네디가 지중해에서 쾌락의 파티를 벌인 사이, 미국에 있던 재키는 임신한 상태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출혈을 했다. 결국 재키는 임신 7개월 만에 유산했다. 케네디는 이 사실도 모른 채 요트에서 즐기고 있었다.

언론이 먼저 재키의 유산 소식을 보도했다. 기사가 난 것도 모르던 케네디는 나중에 아내의 소식을 알고도 "지금 간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냐"면서 여행을 계속하려 했다.

이에 케네디와 함께 있던 한 의원은 "네가 결혼을 지속하고 싶거나 백악관에 입성하고 싶으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경고했다.

조지프 케네디는 며느리를 위해 더 큰 금융 치료를 준비했다. 며느리를 불러서 제발 한 번만 더 참고 자신의 아들과 살아달라며 현금 100만 달러, 지금으로 따지면 13억 이상의 돈으로 며느리에게 물량 공세를 펼쳤다.

여기에 조지프 케네디는 아들을 따로 불러서 "바람을 피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좀 조심하라는 거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녀의 인내 덕분인지 케네디는 미국의 보통 가족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결과적으로 대선에 승리하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뒤 케네디의 바람기는 더 심해졌다. 이제 꿈을 이룬 재키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영부인 스타일로 맞바람을 피우기 시작한 것. 그녀는

배우 그레고리 팩, 말론 브란도, 워런 비티, 프랭크 시나트라 등과 교제를 시작했다.

완전히 곪아버린 관계를 폭발시킨 건 세기의 섹스 심볼 마릴린 먼로와 케네디의 스캔들이었다.

1962년 사교계 클럽에서 만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공개되자 미국은 큰 충격에 빠졌다.

iMBC 연예뉴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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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가 재키에게 전화해서 "내가 영부인이 될 테니 각오하라"는 협박성 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대통령 재선 시즌, 이런 소문이 나자마자 케네디는 마릴린 먼로와의 관계를 정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릴린 먼로가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재선을 앞두고 말도 안 되는 성 스캔들을 일으킨 남편 케네디를 재키는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재클린 케네디는 재선 시즌 중 아이들을 데리고 2주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이 부부관계의 종말을 고하게 되는 또 한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라는 재벌이었다.

이 당시 오나시스는 재키의 친동생과 내연관계였는데 우연히 만난 재키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호화 유람선에 놀러 오라고 재클린을 초대하고 케네디가 이를 알게 된다. 케네디는 노발대발하며 가지 말라고 화를 내지만 재클린 케네디는 보란 듯이 유람선에 승선한다. 오나시스는 당시 6억원에 상당하는 보석을 재클린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졌고, 케네디는 재클린 케네디 동생의 고발로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 뒤 이성의 끈을 붙잡은 재클린 케네디는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선거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 후 텍사스 유세 현장에서 케네디는 46살의 나이로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

케네디의 장례식에서 슬픔을 꾹 누르는 영부인의 모습에 온 국민은 그녀를 신뢰하게 됐다.

이후 재클린 케네디는 존f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와 결혼해서 백악관에 재입성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케네디 로버트 케네디는 이미 유부남이었다.

이 당시 제클린 케네디는 이후 상원의원이 된 로버트 케네디와 별장으로 여행을 갔다. 이때 한 이웃은 수영복 차림의 재클린 케네디가 테라스로 나와서 로버트와 관계를 맺는 걸 봤다고 증언했다. 당시 재클린 케네디는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관계도 유지 중이었다.

한편 5년 후 차기 유력 대선 후보로 로버트 케네디를 위한 가족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로버트 케네디 또한 암살당했다. 이후 재키는 "나는 여기가 너무 싫다. 미국을 경멸한다. 계속 케네디가 사람들을 죽이면 우리 아이들이 다음엔 표적이 될 거다"고 인터뷰했다.

이후 얼마 안 돼 재클린은 오나시스와 결혼을 결정했다. 결혼 이틀 뒤 오나시스는 주변에 "재키랑 결혼한 거 최악이야. 하루 종일 로버트 얘기밖에 안 해"라고 했다고 한다. 결혼 5년 후 오나시스는 기자들에게 전화 해 아내가 몇일, 몇시, 어느 해변에 가면 재키가 누드로 일광욕을 하고 있을 거다"는 정보를 흘렸다. 이 사건으로 부부 관계는 종결됐고, 두 사람은 이혼에 합의했다.

두 사람은 이혼을 계획했지만, 오나시스가 또 숨을 거뒀다. 오나시스는 "내 모든 재산을 딸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물론 재키는 이후 소송을 통해서 1500억 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을 겪고 재키는 뉴욕으로 돌아왔고, 벨기에 출신 금융인 모리스 템펠스만과 교제했다. 재키는 말년에 임파선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받는데 템펠스만은그녀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켰으며 가장 오래 관계를 유지한 남자였다고 한다.

한편 매주 월요일 밤 8시30분 방영되는 '장미의 전쟁'은 실제로 벌어진 영화 같은 커플들의 스토리를 소개하고 다양한 시선으로 분석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iMBC 이소연 | 화면캡쳐 MBC에브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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