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명령휴가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경쟁을 거쳐 판매하는 제조업과 달리 은행은 생산품이 없다. 국내 시중은행은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돈을 빌려 소비자에게 대출해서 이익을 남긴다. 비교적 손쉽게 돈벌이를 할 수 있으니 정부는 일정 자격을 갖춘 경우에만 영업을 허가한다. 공공재인 돈을 제품 삼아 영업할 배타적 권리를 받은 만큼 은행은 정부 정책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민간기업임에도 은행을 금융기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 직원 평균 연봉은 지난해 1억550만원이었다. 인사혁신처의 지난해 공무원봉급표와 비교하면 1급 일반직 최고 호봉(23호봉) 8502만원보다 많고, 군인 대장 연봉 1억220만원과 비슷하다. 공기업 정규직 평균 연봉 6976만원과도 큰 격차를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이익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올해 들어서도 4대 은행의 상반기 이자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 넘게 급증했다. 자본시장에 상장된 은행의 주인은 주주이다. 주주를 위해 이익을 극대화해야 할 책임도 있다.
은행원에게 고액 연봉을 지급하는 것은 한눈팔지 말고 업무에 전념하라는 뜻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은행원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를 보면 8개 시중은행에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18.6건의 횡령·유용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우리은행 직원 한 명이 700억원을 빼돌리는 대형 사고가 드러났다. 8년간 횡령을 저지르는 동안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은 먹통이었다.
금융감독원이 금융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명령휴가제’ 강화를 추진키로 했다. 명령휴가제는 금융회사가 직원을 불시에 휴가 보낸 뒤 업무에 부실이나 비리가 없는지 점검하는 제도이다. 은행은 출납과 트레이딩, 파생상품거래 등 전체 직원의 15%가량이 명령휴가제 대상이다. 거액을 횡령한 우리은행 직원은 10년간 한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명령휴가 대상에 한 차례도 선정되지 않았다. 명령휴가제 등 내부통제 강화에 대해 은행권에서는 ‘관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익 늘리기에 골몰하느라 공적 책임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은행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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