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보스턴 마라톤 '禁女의 벽' 깬 순간.. 숨은 조력자 있었다

입력 2022. 8. 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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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기울어진 운동장서 여성 도운 남성들 -1
1960년 중반까지 여성 참여 '암묵적 금지'
수풀 속 숨었다 뛰었던 로버타 깁과 달리
여대생 스위처는 실력으로 코치 설득해
성별 모르게 이름 '이니셜'로 경기 출전
남자친구는 저지하는 감독관 몸으로 막아
2017년 50주년 레이스 완주 관중들 갈채

지난달 19일 한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한국은행 여성직원과 간담회에서 자신이 연방준비제도 이사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남편이 “걱정하지 말고 무조건 하라”고 얘기했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옐런 성공을 위해 장거리 통근을 하며 가사를 분담했던 사람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성에게는 여전히 크게 기울어져 있지만 그런 세상에서 여성이 조금이라도 동등한 경쟁을 하도록 돕는 남성들이 있다. 특히 체육계에서 그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해볼까 한다.
261번을 단 캐서린 스위처 뒤에서 양복을 입은 조직위원장 조크 셈플이 달려와 번호표를 뺏으려 하고 있다. 왼쪽에서 그를 제지하는 반바지를 입은 남성이 브릭스 코치. 오른쪽 사진은 50년 후인 2017년에 다시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 캐서린 스위처.
201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는 70세 여성이 풀코스를 완주해서 결승선을 통과하며 관중의 환호와 언론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사람들이 이 여성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가 70세라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그 여성이 캐서린 스위처(Katherine Switzer)였기 때문이다. 스위처는 196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이 대회 첫 공식 여성 완주자가 되었고, 2017년 완주는 그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스위처 기록은 설명이 약간 필요하다. 엄밀하게 말해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 여성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로버타 깁(Roberta Gibb)이라는 여성은 한 해 앞선 1966년 이 대회를 완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캐서린 스위처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공식’ 완주자였기 때문이다. 깁은 스위처보다 한 해 먼저 완주하기만 한 게 아니라, 스위처보다 훨씬 더 빨랐다. 깁은 스위처가 참가한 1967년 대회 때도 뛰었고 스위처보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빨리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깁은 대회 참여자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기록은 공식 기록이 아니다.

깁은 공식적으로 참가하지 않았고, 스위처는 어떻게 공식 참가가 가능했을까? 당시만 해도 보스턴 마라톤은 여성 참가를 허용하지 않았다. 지금은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리지만 여성이 그런 장거리를 뛰면 자궁이 떨어지고 가슴에 털이 자라는 등 ‘건강상의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1960년대 미국은 거대한 사회 변화를 겪고 있었다.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 지도자들이 이끄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국을 휩쓸었고, 그런 사회 변화 분위기에서 여성이 받는 성차별에 대한 불만 역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마라톤 대회 중 하나인 보스턴 마라톤은 여성 등록 자체를 금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이 대회에서 뛰고 싶었던 로버타 깁은 번호표(배번)를 받지 않은 채 수풀 속에 숨어있다가 뛰어나와서 완주를 한 것이다.

캐서린 스위처의 생각은 달랐다. 달리기를 좋아해서 한겨울에도 눈보라 속에서 10㎞를 달리는 운동광이었던 그는 재학 중인 시러큐스 대학교 달리기 코치에게 보스턴 마라톤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 코치는 대학교에서 우편배달부로 일하면서 짬을 내어 학생들에게 장거리 달리기를 훈련시키던 50세의 남성 아니 브릭스였다. 평소 스위처 실력을 인정하던 브릭스였지만 보스턴 마라톤에서 뛰겠다는 스위처 생각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여자는 보스턴 마라톤에서 뛸 수 없어.”

당시 브릭스는 보스턴 마라톤만 15차례를 뛴 보스턴 마라톤 베테랑이었다. 그런 그는 그 대회가 어떤 대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위처는 로버타 깁이 지난 대회에서 완주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브릭스 코치를 설득했고, 브릭스는 스위처에게 “그렇다면 뛸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라”고 했다. 스위처는 대회 3주 전 처음으로 코치와 함께 42.195㎞를 완주했다. 하지만 풀코스를 뛴 후에도 힘이 남았던 스위처는 더 뛰자고 했고, 마지못해 그러자고 했던 브릭스 코치는 스위처와 함께 뛰다가 50㎞ 지점에서 지쳐 쓰러졌다.

스위처의 실력이 충분함을 확인한 브릭스는 스위처가 보스턴에서 뛰는 것에 동의했지만 로버타 깁처럼 번호표를 받지 않고, 즉 공식적인 참가 등록 없이 뛰는 것에는 반대했다. 대회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아마추어 체육연맹의 제재를 받게 될 거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 대회는 여성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데 어쩌란 말이었을까?

흥미롭게도 보스턴 마라톤 규정집에는 젠더(성별)와 관련한 내용이 없었다. 즉, 여성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건 성문화된 규정이 아니었고, 성문화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상식’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이 이렇게 견고한 것은 두 사람에게는 기회였다. 차별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바람에 제도에 구멍이 있었던 것. 그래서 캐서린 스위처는 성별을 알 수 있는 이름(Katherine)을 약자로 표기한 ‘K. V. 스위처’라는 이름으로 보스턴 마라톤에 등록한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브릭스 코치는 그 과정을 돕는 ‘공모자’가 된 셈이다.

스위처는 이 ‘거사’를 계획하면서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로 알렸다고 한다. 딸이 어떤 아이인지 잘 알았던 그의 아버지는 “넌 할 수 있어. 너는 강인하고 훈련도 열심히 했으니까. 잘할 거다”라고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스위처의 남자친구 밀러(오른쪽)가 셈플을 온몸으로 밀어내고 있다.
스위처를 공식 참가자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준 남성은 한 명 더 있다. 바로 스위처의 남자친구 톰 밀러다. 체중 106㎏의 거구였던 밀러는 미식축구 선수였다가 해머던지기 선수로 전향한 스포츠맨으로 여자친구 옆에서 함께 뛰겠다고 나섰다. 한 번도 마라톤을 뛰어본 적이 없었지만 “여자가 뛰는데 내가 왜 못 뛰겠냐”며 등록한 것이다.

밀러는 스위처가 발각될 것을 염려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위처가 6㎞ 구간을 통과할 때 즈음 여자가 마라톤을 뛰고 있다는 사실이 조직위원회에 알려졌다. 스위처에 따르면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 분위기는 좋았다고 한다. “어라, 여자가 뛰고 있네?”하고 놀랐던 관중과 기자들은 스위처에게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 조직위원장이자 감독관인 조크 셈플 생각은 달랐다. 버스를 타고 선수들을 따르던 그는 차에서 내려 스위처를 쫓아가 번호판을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번호표 내놓고 경기에서 나가!”라며 스위처의 웃옷을 움켜쥐었다. 그때 스위처 옆에서 달리던 남자친구 밀러가 몸을 날려 셈플을 밀쳐냈고 스위처는 브릭스 코치와 셈플 호위를 받아 경주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스위처 앞을 달리던 기자들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고, 영상으로도 생생하게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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