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두창이 온다
[숨&결]
[숨&결]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지난달 23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원숭이두창을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로 선언했다. 원숭이두창은 아프리카 밖에서 보기 어려운 병이었지만 이제 전세계에 퍼지고 있다. 지난달 29일까지 우리나라 포함 79개국에서 2만2485명이 감염됐다. 환자 수는 5월6일 1명, 6월1일 733명, 7월1일 6448명으로 증가세가 가파르다.
1980년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 박멸을 선언했다. 수천년간 인류를 괴롭힌 무서운 질병이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백신 덕이었지만, 질병이 사라지자 접종도 중단됐다. 현재 원숭이두창이 유행하는 이유는 50대 아래로 천연두 백신 맞은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두 바이러스는 사촌 간이라 천연두 백신을 맞으면 원숭이두창도 예방된다.
원숭이두창의 자연숙주는 설치류다. 원숭이에서 처음 바이러스가 발견돼 그런 이름이 붙었다. 1970년 콩고에서 첫 환자가 나온 뒤 아프리카 중서부에 토착화됐다. 설치류를 사냥해 먹다가 감염된다고 본다. 증상은 가볍지 않다. 고열과 근육통 등 독감 유사 증상과 함께 림프절이 붓는다. 며칠 뒤 발진이 돋고 고름이 잡히며 매우 아프다. 딱지가 떨어지면 흉터가 남는다. 감염되면 대개 증상이 나타나고, 증상이 있는 동안만 전염되며, 밀접접촉으로 퍼진다. 코로나처럼 공기전염되거나, 에이즈처럼 모르는 새에 옮는다면 진작 널리 퍼졌을 것이다. 올해는 뭐가 달라졌을까?
전염병의 양상이 변하면 세가지를 살핀다. 병원체, 인간, 환경이다. 바이러스 게놈 분석 결과 예상보다 많은 돌연변이가 관찰됐으며, 일부는 전파력을 높인 것 같다. 돌연변이는 활발히 분열할 때 생긴다. 올해 초 아프리카에서 환자가 늘어 지원을 호소한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올해 아프리카 밖에서 발생한 환자는 대부분 동성 간 성관계 이력이 있는 젊은 남성(98%)으로, 발진과 피부 고름집도 항문과 음부에 한두개만 있었다. 성매개 감염병 비슷한 양상이다. 동성애 축제가 진원지로 지목되지만, 코로나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도 나온다.
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인구는 계속 늘고, 지구는 날로 더워진다. 동물의 서식환경은 최악이다. 살 곳과 먹을 것이 없어지면 동물은 마을로 내려온다. 빈곤이 극심한 아프리카에서는 야생동물을 많이 잡는다. 접촉이 늘고 동물 병원체는 점점 자주 인간의 몸속으로 뛰어들어 증식하고, 병을 일으키고, 돌연변이 기회를 잡는다.
원숭이두창은 얼마나 위험할까? 대처하기 쉽다고 믿었다. 천연두 백신이 남아 있고, 전용 백신과 치료제도 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병이 아니다. 사망자는 아프리카 얘기일 뿐, 의료접근성이 높은 곳에서는 걸려도 죽지 않았다. 그러나 브라질과 스페인에서 사망자가 나오자 분위기가 변했다.
우리는 아직 남의 일로 보는 것 같지만, 불확실성은 크다. 환자의 피부는 물론 정액, 침, 대소변, 콧속에서도 바이러스가 나왔다. 모르는 새 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반려동물 감염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렇게 된다면 병은 전세계에 토착화될 것이다. 인류가 천연두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병원체가 인간만 숙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인수공통 병원체는 모든 인간과 동물에게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한 없앨 수 없다.
적벽에서 제갈량은 동남풍을 불러 화공으로 조조군을 전멸시킨다. 그 전에 연환계로 적을 속여 모든 배를 갈고리로 연결했다. 일단 한 척에 불이 붙자 서로 묶인 배들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지금 세계의 모습이 이와 같다. 우리는 너무나 연결돼 있어 팬데믹이란 불화살을 누구도 혼자 피할 수 없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태도 자체가 위험이다.
3년 새 두번째 팬데믹을 맞는다. 백신 독점, 저개발국가 내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접종 미비 등 코로나 초기의 풍경이 그대로 반복된다. 환경과 생태 위기가 지속되는 한 전염병은 계속 찾아올 것이다. 저널리스트 이지도어 파인스타인(I. F.) 스톤의 말은 가슴을 친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함께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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