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레이온을 떠올리며 - 산재예방은 안전과 보건 양날개로

한겨레 2022. 8. 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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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 공장으로 악명이 높았던 원진레이온이란 기업은 대한민국에서 사라졌다.

1000명 가까운 이황화탄소 직업병 근로자를 양산했던 일터와 공장 건물은 사라졌지만, 원진레이온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산재 예방의 중요성에 관한 교훈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언론도 원진레이온 사건을 계기로 일터 안전에 관심을 키우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처럼 취재수첩 앞 장에 '산재·직업병 예방'을 추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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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8월, 경기도 남양주군 원진레이온 정문 앞에서 열린 산재노동자들의 규탄 시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왜냐면] 안종주 |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직업병 공장으로 악명이 높았던 원진레이온이란 기업은 대한민국에서 사라졌다. 1993년 공장이 문을 닫았고 인조 비단실을 뽑아내던 방사기계는 이듬해 중국으로 팔려갔다. 1000명 가까운 이황화탄소 직업병 근로자를 양산했던 일터와 공장 건물은 사라졌지만, 원진레이온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산재 예방의 중요성에 관한 교훈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1988년 7월 <한겨레> 보도로 그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원진레이온 직업병 참사는 산업보건의 역사를 바꿔놓은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았다. 당시 산업은행 관리를 받던 원진레이온 회사 쪽과 정부, 전문가들은 열고 싶어 하지 않던 상자였다. 하지만 상자의 문이 열리자 많은 근로자가 제대로 된 호흡보호구를 쓰지도 못한 채 장시간 독가스를 마시며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 너무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 환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부와 기업 모두 산재·직업병 예방에 손 놓고 있었다. 당시는 산재 예방에 힘을 쏟을 수 있는 시대 상황이 아니었다. 원진레이온 사태 발발 1년 전에야 산재 예방을 위한 한국산업안전공단(현 안전보건공단)이 겨우 첫발을 내디뎠을 정도다.

원진레이온 사건 이후 판도라의 상자에 새로운 희망이 담겼다. 199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돼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가 강화됐다. 산업보건전문간호사제, 건강관리카드제, 직업의학전문의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정기 안전보건교육 실시, 유해·위험작업 노동시간 제한, 중대재해 사업장 안전보건진단, 산재예방기금 설치·운용 등 10여개 굵직한 조치들이 상자 속에 담겼다.

하지만 우리는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은 여전히 산재·직업병 왕국이란 오명에 시달리고 있다. 갈 길은 멀고 험하다. 지난 정부 동안 산재사고 사망 절반 줄이기에 주력하면서 직업병 예방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다. 2017년 964명이었던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지난해 828명으로 줄었지만, 절반까지 줄이는 데에는 사실상 실패했다. 일터 사망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부터 다시 살펴보되, 이제는 보건 쪽에도 그에 못지않은 관심과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산재 예방에는 안전과 보건의 양 날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직업병으로 숨지는 근로자가 산재사고로 숨지는 이들보다 훨씬 더 많다. 지난해 직업성 질병으로 숨진 사람은 1252명으로 전년보다 72명 늘었다. 산재사고 사망자(828명)보다 50%가량이나 많다.

이제 산재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원진레이온 직업병 참사를 끄집어내어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언론도 원진레이온 사건을 계기로 일터 안전에 관심을 키우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처럼 취재수첩 앞 장에 ‘산재·직업병 예방’을 추가해주길 바란다. <한겨레>가 최근 보도한 ‘살아남은 김용균들’이란 탐사기획 기사가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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