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부처 해체가 유일한 목표인가

한겨레 2022. 8. 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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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새 정부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권김현영 | 여성학 연구자

지난달 15일 인천 인하대학교 교정 안에서 사망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처음 기사로 접하고 정말 놀랐다. 대학 캠퍼스 안에서 같은 대학 학생에게 성폭행당한 뒤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일어나다니, 이런 일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건 발생 직후 언론 보도는 그야말로 또 하나의 재해 수준이었다. 피해자만을 여성으로 표기하고, 발견 당시의 상황 묘사를 불필요하게 자세히 해 강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을 조장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한겨레>만 제외하고 모든 신문의 제목이 문제였다.

<한겨레>는 어떻게 해서 다른 보도가 가능했을까. 한겨레 콘텐츠총괄 정은주 기자는 지난달 19일 ‘선정적·성차별적 제목, 고백합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겨레에서도 똑같은 문제의 기사를 낼 뻔했으나 편집자와 젠더데스크의 게이트키핑을 통해 제목이 수정됐다고 밝혔다. 성폭력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젠더데스크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한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인 셈이다.

2020년 기자들의 성평등 보도를 위한 교안을 만들기 위해 기자 20여명과 초점면접인터뷰를 할 때 들었던 말이 기억난다. 대형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보도하기 바빠서 가이드라인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특히 데스크가 속보 경쟁을 중시할 때는 그걸 막느라 정신이 없고 다음날부터 언론 보도로 생긴 문제에 대한 면피성 보도를 한다고 씁쓸하게 고백했다. 기자 개인의 성평등 의식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데스크가 달라져야만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이후 신문·방송사 데스크를 만날 기회만 있으면 “시스템은 멀리 있지 않다. 당신이 바로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학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부 차원의 책임자는 누구일까? 여성가족부 장관이 그중 한명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달 24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이건 학생 안전의 문제지, 또 남녀를 나눠 젠더갈등을 증폭하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의 20%가 남성”, “대학에서 강의할 때 군대 다녀온 남학생들이 수업을 못 따라오는 경우도 있었고”, “젊은 남성들은 가부장적 지위를 누리거나 남성 우위 사회에서 살지 않았는데 결혼할 때는 전부 남성이 집을 해와야 한다는 등 고정관념이 여전히 있다”는 등의 말을 이어갔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전 과정에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이가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무려 여성가족부 장관 자리에 있는 자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망으로 이어진 사건이 발생하고 2차 피해까지 보도되는 상황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대통령의 말만 그대로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의 무능을 전시해 부처 폐지론에 힘을 싣기 위해서?

참고로 교육부에서는 사건 발생 사흘 뒤 보도자료를 내어 야간출입관리 강화, 취약시간대 순찰 확대, 방범시설 등 안전관리 강화를 비롯해 학내 성폭력 예방교육 점검 및 특별교육 추진, 2차 피해 확산 방지, 심리안정 프로그램 지원 등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 인하대는 2012년 경비노동자 인력을 35명에서 15명으로 줄였다. 2021년에는 대학기본역량 진단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아 정부 일반재정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예산절감이 안전하지 않은 대학으로 이어진 것이다. 밤늦은 시간 건물관리 인력이 더 있었다면, 동료 여학생에 대한 외모평가부터 강간 모의에 이르기까지 각종 폭력적 발언들이 농담으로 소비되는 톡방 성희롱 문제부터 제대로 해결됐다면, 성폭력 예방교육부터 징계에 이르는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었더라면 이번 사건은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하대에 대자보를 붙인 익명의 학생(@inhamoksori)은 “오늘날 학교가 맞은 위기는 무엇을 우선 말하고, 우선 듣고, 우선 답해야 하는지 가리지 못해 벌어졌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완전히 동의한다. 여성가족부 장관은 들을 필요가 없는 얘기를 우선 들었고, 할 필요가 없는 말을 굳이 던졌다.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자격은 고사하고 어른으로서 양심조차 없는, 완벽한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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