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살 입학 교육격차 해소?.."태어나자마자 사교육시킬 판"
입학연령 낮춰 학력격차 줄이겠다는데
사교육 1년 앞당겨 교육격차 커질수도
돌봄공백 커져 여성경력단절 우려도
사회진출 시기를 앞당길지도 "불확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현행 만 6살에서 만 5살로 낮추는 학제개편안에 대해 학부모와 교원단체의 반발이 계속되자, 정부는 ‘유아를 공교육에 조기 편입시켜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임을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유아교육의 공교육화’엔 공감하지만, 정부 추진 방안은 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학력격차 해소? “조기 사교육 성행”
논란이 커지자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일 기자들과의 만남을 자청해 “교육부가 입학 연령 하향을 업무 보고에 포함시키게 된 것은 아이들의 성장에 있어 모두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게 하겠다는) 그리고 국가 책임 아래서 아이들이 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고 밝혔다. 교육격차가 사회·경제적 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바로잡기 위해 초등 입학연령 하향을 추진한다는 설명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 격차 해소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1년 조기 입학’은 해법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공교육으로 교육 격차를 좁힐 대안이 제시되지 않은데다, 조기 입학이 조기 사교육 성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홍민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초등 입학은 학부모들에게 ‘학습의 시작’이라는 강력한 신호이고 사교육 시장도 이에 맞춰 주도면밀한 홍보를 한다”며 “아무런 대책 없이 입학연령을 낮추면 사교육이 1년 더 일찍 이뤄지는 꼴이고, 사교육에 빨리 투입된다면 교육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인터넷 맘카페에는 “태어나자마자 조기교육 시킨다고 사교육이 더 불타오르겠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학교가기 전에 어느 정도 완성시켜 보내는 분위기다. 당장 이젠 만4살에 한글 읽기·쓰기를 마쳐야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는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에도 잘 드러나 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육아정책연구소가 교육과학기술부의 수탁을 받아 발표한 ‘초등학교 취학연령 및 유아교육 체제 개편’ 보고서를 보면, 연구진은 “입학연령 하향이 사교육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보고서는 “(2009년 사교육비 자료 조사를 근거로 1년 일찍 입학할 경우) 초등에서 고등학교까지 사교육비 전체의 6.8%(2494만원) 감소가 예상된다”면서도 “초등시기를 빨리 경험해 더 많은 종류의 사교육을 어린 연령에 접하고 만 4살 이전 사교육이 늘어날 효과가 상존한다”고 밝혔다. 이런 기대심리가 반영된 탓에 1일 주식시장에선 교육관련 주가가 줄줄이 오름세를 보이기도 했다.
저출산 해결? 경력단절 심해질 듯
정부는 초등입학 연령이 저출산 문제 대책은 아니라면서도 “일찍 입학하고 일찍 졸업해 결혼 연령도 빨라지는 (효과를) 부정할 수 없다”고 여지를 남겼다. 입학을 앞당기면 ‘졸업→입직→결혼’이 순차적으로 빨라져 저출산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전문가들은 조기 입학이 돌봄 공백을 키워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심화시키고 그 결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유치원·어린이집은 (돌봄 환경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어) 비교적 돌봄 걱정이 덜한데, 초등학교로 가게 되면 돌봄 공백이 커진다. 이 때 직장을 그만두는 부모들이 많다”며 “현재 나온 방안은 돌봄에 대한 고민을 되레 1년 앞당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11월 범정부 온종일 돌봄 수요조사 결과를 보면, 초등학교 재학생과 예비 취학아동의 보호자 104만9607명 가운데 47만4559명이 돌봄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2020년 돌봄교실을 이용한 학생 수는 그 절반 수준인 25만6213명에 불과했다. 초등 돌봄교실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많은 부모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돌봄을 원하는 학생 수가 만을 경우 추첨을 통해 돌봄교실 이용자를 선정한다.
교육부는 초등 1~2학년에 대해선 저녁 8시까지 하는 돌봄 등 대안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학부모들은 불안하다는 반응이다. 만 3살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김아무개(32)씨는 “8시 돌봄이 왜 지금은 안되고 그 때는 되는 것이냐. 지금부터 가능하다는 걸 정부가 보여줘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입직연령 하향 효과도 미지수
정부는 조기 입학으로 졸업시기가 빨라져 시장에 노동력을 빨리 공급하는 효과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조기 입학이 사회진출 시기를 앞당길지는 불확실하다.
‘초등학교 취학연령 및 유아교육 체제 개편’ 보고서는 만 5살 취학이 입직연령 하향화를 가져오기 어렵다며 그 근거로 청년들이 노동시장 상황을 주시하며 졸업을 유예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또 서로 다른 연령의 유아들이 한 학년으로 묶이는 과도기에는 취업난이 가중될 수 있다. 보고서에서는 “한해 200% 혹은 4년 간 연속 125%라는 많은 인원이 동시에 대학을 졸업하게 될 것이므로 그들이 한꺼번에 진출하게 되는 노동시장에선 고용 악화가 심화될 수 있다”고 봤다.
보고서를 공동 집필한 김진영 건국대 교수(경제학부)는 “현재도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정책 과도기에 해당하는)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면 노동시장에서 그들을 모두 흡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입학연령 1년 조정이 고용에 미칠 긍정·부정 측면을 예단하긴 어렵다”면서도 “노동공급이 부족하다는 건 특정분야 에 해당하는 이야기지 노동시장 전반에 나타나는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입학 연령을 무리하게 낮추기 보다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익중 교수는 “어린 시절 벌어지기 시작한 교육 격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른 시기 유아가 공교육에 편입되는 것은 중요하지만 굉장히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며 “만 5살 유아를 초등 1학년과 섞지 않고 (초등 1학년 시작 전 기초학년 개념인) 케이(K·Kinergarten) 학년으로 따로 묶어 유아 의무교육을 실현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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