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 입학' 명분은 있는데..역대정부 번번이 실패, 왜?
기사내용 요약
15년 전 국책연구기관 "최소 15조 소요"
아동 발달 속도 빨라졌다? "근거 부족해"
입직연령 단축한다? "오히려 고용악화"
OECD 38개국 중 한국 등 26개국 '만6세'
'만 5세 입학' 호주·영국 등 4개국 불과해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을 골자로 하는 학제개편을 추진하겠다는 밝혀 학부모를 비롯한 교육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1년 단축하자는 논의는 과거 정부에서 저출산 문제와 인구 감소에 따른 해결책으로 논의돼 왔지만 번번이 무산돼 왔다.
아동 발달 속도가 빨라졌다고 하지만 그 수준이 초등학교 교육을 받을 수준인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학부모 돌봄 부담을 낮춰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등 그 효과에 대해서도 국책연구기관 다수가 부정적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
1일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KEDI) 연구보고서 등에 따르면 초등학교 의무교육 취학 연령이 만 6세로 정착된 것은 교육법(현 교육기본법)이 처음 만들어졌던 1949년으로 지금으로부터 73년 전 일이다.
지난달 30일 교육부가 업무계획을 통해 발표한 대로 오는 2025년 개편이 이뤄진다면 76년만에 초등학교 입학연령이 1년 앞당겨지는 셈이 된다.
앞서 1987년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심의회를 통해 정부 차원의 입학연령 단축 논의가 제기됐다.
심의회는 당시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유연하게 적용해 조기입학 제도를 허용하고, 우수 학생에 대한 월반제를 도입해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1997년과 2007년 초·중등교육법 제·개정에 의해 만 5세 조기입학과 만 7세 '과령취학' 제도가 법에 마련됐지만 만 6세라는 원칙은 유지돼 왔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9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제 1차 저출산 대책회의'를 열고 만 5세 취학을 제시하기도 했다. 입학연령을 1년 낮추면 육아비용이 줄고, 절감된 예산을 4세 이하 아동의 보육과 교육을 강화하는 데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10월 보건복지부와 당시 여당이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꺼내 들기도 했었다. 당시 교육부는 당정협의를 부인하는 설명자료를 내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학제 개편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교육을 6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대신 입학 연령을 1년 앞당겨 만 5세에 입학시키자는 것이다. 또 유치원 교육 2년을 의무교육에 편입하는 '2-5-5'제를 공약한 바 있다.
초등 입학을 1년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 KEDI 연구진은 "아동발달 속도가 빨라지면서 만 5세 취학도 가능하고, 의무교육을 받아 유아 사교육비 절감, 산업인력 조기 확충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전한다. 만 6세 입학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단축에 따른 이득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연구진은 "과거와 달리 아동들의 발달 속도가 빨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만 5세 취학을 가능하게 할 만큼 타당하게 변화한 것인지 여부를 밝혀줄 만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발달심리학적 측면에서 만 5세 유아들은 놀이를 통해 전두엽을 발달시켜야 하는데, 충분하게 발달하지 않은 만 5세 유아는 초등학교의 형식 교육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2010년 연구도 소개됐다.
교육부에서 입학연령 단축 추진을 발표한 직후 교원단체들을 중심으로 "학습 준비도나 학교생활 준비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입직연령'이 단축될 수 있다는 논거에 대해서도 KEDI 연구진은 "1년 일찍 사회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우리나라 청년 고용률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KEDI 뿐만 아니라 교육부 용역을 받아 수행된 다른 국책연구기관 보고서에서도 드러난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 2011년 내놓은 '초등학교 취학연령 및 유아교육 체제 개편 연구'(연구책임자 장명림)를 보면, 연구진은 "최소한 4년 동안 연속적으로 125%라는 많은 인원이 동시에 대학을 졸업하게 될 것이므로 고용악화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부작용을 지적했다.
현재 한국의 초등학교 입학 연령이나 의무교육 시작 연령이 다른 국가들에 비춰 특별히 늦은 게 아니다. 대학교 입학이나 취업을 할 수 있는 후기 중등교육 종료 시점도 특별히 늦은 게 아닌 상황이다.
'OECD 교육지표 2021'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중 만 5세에 초등교육을 시작하는 국가는 호주, 아일랜드, 뉴질랜드, 영국(4~5세) 4개국에 불과하다. 다만 호주와 아일랜드는 의무교육 시작 연령이 만 6세로 이를 감안하면 2개국이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26개국은 만 6세, 핀란드·스웨덴·에스토니아·헝가리·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스위스 등 8개국은 만 7세에 초등교육을 시작한다.
한국의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은 만 17세로, 다른 OECD 회원 19개국과 같다. 이보다 빠른 국가는 콜롬비아·코스타리카 2개국(16세)에 그친다. 핀란드·독일 등 15개국은 18세, 스위스는 19세로 더 늦다.
만 5세 조기 취학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극소수에 그친다. 지난해 기준 KEDI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전체 초등학교 취학자 42만8405명 중 만 5세 조기입학자는 537명(0.125%)에 그쳤다.
조기 취학자 수는 2020년 521명(0.122%), 2019년 651명(0.137%) 등 매년 500~600명 안팎을 머물고 있다. 2009년에는 9707명(2.067%)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그 해부터 '빠른 생일'이라 불리는 1~2월생의 조기 입학 제도가 없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만 5세를 단계적으로 조기 입학시킬 경우 예상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연구도 이미 15년전 나왔었다.
지난달 30일 교육부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오는 2025년부터 만 5세 아동을 25%(3개월) 단위로 4년 동안 추가적으로 입학시켜 입학 시기를 당기는 방안이다. 2025년에는 2018년 1월~2019년 3월생이 입학하는 식으로 15개월씩 입학하는 것이다.
KEDI가 2007년 내놓은 연구보고서 '미래사회에 대비한 학제개편 방안'(연구책임자 박재윤)을 보면, 2008년부터 만 5세 아동을 25%씩 추가 입학시킬 경우 그해부터 2022년까지 14년에 걸쳐 최소 14조672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교원 증원에 필요한 비용 1조4384억원, 시설 확보에 필요한 비용 총 13조2332억원을 합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 밖에도 두 연령대(만 6세와 5세)가 함께 학교를 다니는 동안 '통합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하는 측면에서 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dobag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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