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빠진 아동 정책"..'만 5세 입학' 추진에 뿔난 교사·학부모들
“15분도 가만히 있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교과서를 보면서 40분간 앉아있는 게 가능할까요? 놀이보다는 학습 위주로 교육이 이뤄지는 기관에서 만 5세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을까 큰 걱정입니다.”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6년째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박다솜씨는 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교육부가 발표한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박씨는 “만 5세 조기 취학은 유아 발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취약계층에게도 공교육 혜택을 주기 위함이라면 유아교육 공교육화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교육부가 2025년부터 취학 연령을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발표하자 유치원·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43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범국민연대)는 1일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이 유아의 성장·발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을뿐 아니라 교육 현실과도 괴리된다고 지적했다.
유치원 교사들은 성장·발달이 미숙한 유아들이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7년차 어린이집 교사 A씨(27)는 “등하원을 혼자 하는 만 5세는 못 봤고, 개중에는 혼자 화장실 가는 것도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며 “한글도 모르는데 교과서, 가정통신문 등 글자와 밀착해 생활하는 학교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5년차 교사인 김모씨(29)는 “아이들은 1년마다 성장 정도가 다 다르고, 연령별 교육 방법이 따로 있다. 이를 교대 재학 기간인 4년 내내 배우는 것”이라며 “유치원 누리과정 교육이나 7세 이하(만 5세 이하) 아동에 대한 교육 심리학을 배워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교사 박훈씨(31)는 “선생님이 1학년 아이들의 대소변을 닦아주는 경우를 봤다. 교육활동 외에도 ‘돌봄 육아’를 겸하고 있는 상황인데, 더 어린 학생들이 오면 담임교사가 느끼는 부담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주로 교육 격차를 우려했다. 8세와 10세 자녀를 둔 박모씨(36)는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이 민감한 사안인만큼, 입학 시기가 당겨지면 사교육 시기도 당겨질 것”이라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기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8세 자녀를 둔 이모씨(42)는 “입학 전 부모 소득 격차에 따라 아이들의 교육 수준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한 학제개편안은 중장기적으로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겨 결혼·출생률을 제고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범국민연대는 “초등학교 입학 문제는 해당 연령의 유아에게 어떤 교육이 가장 적절한지에 대한 교육적 고려가 우선돼야 한다”며 “유아들의 삶과 성장을 단지 ‘산업인력양성’이라는 경제적 논리에 종속시키는 정책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부분 부모들은 초등학교 입학을 대입 경쟁의 시작점으로 인지하고 있다”며 “아직 배변훈련조차 끝나지 않은 만 2세, 만 3세, 만 4세 또한 입학 준비를 위해 선행학습을 하는 사교육 시장으로 더 빨리, 더 많이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훈씨는 “교육에 자꾸 효율성을 따지고 아이들을 ‘글로벌 인재’를 육성한다는 미명 하에 몰아붙이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다른 교사도 “아이들을 단순히 ‘미래 인력’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교육부가 교육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모으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편안을 발표한 절차적 문제도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각 시·도교육청과 일선 교사, 학생, 학부모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개편안을 ‘깜짝’ 발표 형태로 처음 공개했다.
범국민연대가 지난달 30일부터 받고 있는 만 5세 초등입학 반대 온라인 서명부에는 1일 오후 2시 기준 13만명이 넘는 인원이 서명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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