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 금지곡들이 다시 울려퍼진다

이한나 2022. 8. 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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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개인전 '소리의 틀'
126년전 민요 재해석 등
미디어아트 5점 송은 전시
금지곡이 연주되는 사운드 설치작품 `눈물 젖은 트위스트`. [사진 제공 = 송은문화재단]
아득히 멀리 잡음 가득한 민요 가락이 들려온다. 눈앞의 디지털 영상에서 강한 물결처럼 흐르던 소리는 점점 약해지더니 약 8분 후엔 소멸된다.

청취 원리나 소리의 구성요소를 탐구해온 작가 김영은이 126년 전 소리로 만든 디지털 퍼포먼스 영상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2022)이다.

그는 송은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전시장 송은에서 오는 13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소리의 틀'에 미디어아트 5점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서양 음악의 요소들과 전통 음악이 만나는 지점을 포착해 영상과 소리로 전한다. 마치 인류학 발표회 같다.

작가가 포착한 소리는 한국 전통음악이 기록 매체에 녹음된 첫 사례로 꼽힌다. 1896년 미국의 인류학자 앨리스 플레처가 미국 워싱턴에서 유학 중이던 조선인 3명에게 직접 공연을 요청해 왁스 실린더에 녹음한 '사랑노래-아라랑 1'이다. 초기 음향기기에서 왁스 표면에 소리를 기록하는 방식은 연약하고 민감하다. 소리는 사라지고 노이즈로 변한다. 이 영상 속에서 작가는 노이즈 리덕션 플러그인(noise reduction plugin) 소프트웨어를 반복 사용해 노래의 잡음을 줄이면서 과거로 다가간다. 노래를 더 선명하게 들으려는 시도는 되레 그 노래를 소음으로 인식해 더욱 파편화시키고 소멸시키는 역설적 상황이 된다.

작가는 이어지는 작품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를 통해 1900년대에 생산된 축음기를 전시장에 놓고, 본인 목소리로 왁스 실린더에 다시 녹음된 '아라랑 1'을 들려준다. 소음으로 인식돼 사라지는 근대 민족지학적 레코딩이 현재 시점에서 되살아난다.

'밝은 소리 A'는 악기를 조율할 때 기준이 되는 표준음 '라(A)'가 한국에 도입된 순간을 재구성한 영상이다. 한 미국인 선교사가 대구에 처음 들여왔다는 피아노 기록을 토대로 산에 운반하는 과정을 재연해 찍었다. 전통 음악적 소리가 서양음악적 소리로 변화하는 과정의 충돌을 보여준다.

지하 전시장에 놓인 스피커에서 연주되는 작품 '눈물 젖은 트위스트'는 일제강점기부터 군사정권시대를 통과하면서 법적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20여 곡의 대중음악을 소환한다. 작가는 노래마다 개성적인 음악적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을 발췌하고 연주해 다시 배치했다. 이후에 하나의 노래로 합쳐진 이 분절된 소리들은 공간 안에 배치된 13개의 스피커를 통해 서로 다른 위치에서 그 음향적 존재를 드러낸다.

2004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작가는 2017년 제17회 송은미술대상전 대상을 받았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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