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속옷·말똥 냄새 나는 숙소..막노동 현장의 땀내 밴 기록들

김종목 기자 2022. 8. 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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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첫 시집 '근무일지'
노동현장에서 겪고 듣고 본 것들
고된 삶·쓸쓸한 죽음 생생히 담아
이용훈 시인 ⓒ박프리들랜더

이용훈 첫 시집 <근무일지>에 적은 ‘시인의 말’은 ‘살아가십시오’다. 시집은 시인이 살아낸 과거에 관한 기록이자 살아갈 미래에 대한 다짐 같다. 삶터는 노동 현장이다. 수화물 터미널, 터널 공사, 하수도 공사, 재개발 현장 같은 일터가 나온다. 목수, 잡역부, 배달부, 굴쟁이로 일하는 노동자가 등장한다. ‘시멘트 맛을 기억하는 숟가락으로 밥’ 먹고, ‘외줄 타기’ 하듯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며 ‘말똥 냄새 나는 숙소’에서 잔다.

이용훈은 먹고, 자고, 일하는 곳 사물 하나하나에 오감을 곤두세운다. 사람, 사람들의 존재 의미를 살핀다. 이용훈의 시어는 겪고, 보고, 들으며 건져낸 것들이다.

“세워지는 모든 존재들은 당신들의 두 손에서 체결되는데/ 당신들이 머무는 객실은 축축하고 마르지 않는 속옷과 수건들로 가득합니다.” ‘미안한 노동’의 공간 배경은 ‘후끈한 열기가 응어리’진 모텔이다. ‘마르지 않는 수건’은 고된 노동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이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사물 같다. 노동자들 사이에도 위계와 차별이 있다. ‘나이지리아 사람 몽고 사람’은 “타월을 충분히 달라는 요구도 시원한 물이 냉장고에 준비되어 있는지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합니다”.

삶은 늘 위태롭다. 어딜 가든 존중받지 못한다. 막노동자라서 막말을 감당해야 한다. “고작 이거 했다 힘든 건 아니지? 탕바리 이곳서 무너지면 너는 어디서도 쓰레기 인생으로 살 거다 쓰레기.”(‘밀가루 시멘트’ 중)

‘노동자 시인’의 ‘노동 문학’이라는 틀로 보면, ‘당신의 외국어’ 중 산재를 묘사한 듯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가 기웃거렸더니, 포클레인에 깔리고, 지게차에 뭉개지고, 마대자루에 담겨서.” ‘한낮의 순찰자’는 맨홀 작업장의 일을 그렸다. “작업반장은 맨홀을 살펴본다 도저히 안 되겠다 말하지만 위에서는 내려가라고 … 누군가는 연락이 두절된 동료를 찾아 내려갔다.”

노동자들은 사고로 죽고 병으로 죽는다. ‘오함마 백씨 행장’은 불안정 노동자의 삶과 죽음에 관한 짧은 기록이다. 백두영씨는 암이 ‘꽤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입원했다. 생명 유지 장치가 분리된 채 주검이 발견됐다. “스스로 정지시킨 건지” 알 수 없다. 병상 수첩엔 “삐뚜름한 손글씨로 현장 주소들과 인력 사무소의 연락처”가 적혔다. 배낭엔 “작업복과 안전화, 바닥이 드러난 스킨로션, 손톱깎이와 날이 무뎌진 일회용 면도기”가 나왔다. 그가 가진 물건 ‘전부’였다.

시인이 오간 현장에는 늘 죽음이 드리워졌다. “불러도 누운 자는 신원미상 일어나질 않아 길 위의 생활자는 짙은 그림자 속 내게의 삶이라.”(‘시체공시소’ 중) 장례식장 화장 일을 하며 쓴 시가 ‘죄송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이다. 생사에 관한 상념을 담았다. ‘나에 대해 모르는 시인’에서는 신체 일부, 장례 사용 물건, 오염 혈액을 담은 상자가 불태워진다. “사라진 것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흔적조차 남을 수 없는 화염 속에서.”

이용훈의 시어는 풍부하고 깊다. 정작 자신에 관한 말은 아꼈다. 인터뷰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첫 시집엔 ‘2018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라는 소개만 나온다. 책 날개에 경구처럼 ‘아니 왜 다짜고짜 수고하라고만 하십니까들’이란 문장을 적었다. 사전을 다시 보니 ‘수고’는 “1. 일을 하느라고 힘들이고 애씀 2. 하기에 힘들고 고되다”는 뜻이다.

이용훈 첫시집 <근무일지>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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