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휴가지만..용산 온 학부모들 "어린이는 당장 행복해야 한다"

장예지 2022. 8. 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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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살 초등입학' 논란]범국민연대 '만 5살 초등 입학 반대' 집회
"유아들 삶을 경제적 논리에 종속..정책 폐기하라"
장애아, 발달 느린 아동에게 악영향 우려도
‘만5세 유아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영유아 발달권을 침해하고 경쟁교육 부추기는 만5세 유아 초등취학 학제개판안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나중에 행복한 어린이는 없다. 영유아의 당장 행복할 권리 보장하라.”

낮 최고기온 32℃도 까지 치솟은 1일, 서울 용산구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 모인 유치원·어린이집 교육 단체 회원들과 아이 손을 잡고 온 학부모들은 이렇게 외쳤다.

이날 교사노동조합연맹과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43개 교육단체와 시민단체가 연합해 만든 ‘만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범국민연대)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살에서 만 5살로 당기는 학제개편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유아들의 삶과 성장을 단지 ‘산업인력 양성’이라는 경제적 논리에 종속시키는 반교육적 정책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이 휴가로 자리를 비웠지만 650여명 참가자는 대통령 집무실 주변 인도와 갓길을 가득 메웠다.

범국민연대는 학제개편안의 문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들은 “20년 뒤 있을 산업인력 공급 체계를 위해 만 5살 유아를 초등학교 책상에 앉혀 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교육적 결정이라고 할 수 없다”며 “현 교육 격차의 원인인 고교·대학 서열화를 해결하겠다는 비전은 제시하지 않은 채 입학 연령을 낮춰 교육 격차를 해결하겠다는 것도 문제의 근본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또 “놀이중심 활동을 해야 하는 유아들을 교실이라는 네모난 공간의 책상 앞에 앉히는 것은 유아기 특성에 맞지 않는다”며 “200만 영유아를 교육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폐원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만 5살 유아를 초등학교로 올려보내면 간신히 버티고 있는 기관조차 문을 닫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학제개편안이 교육 주체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발표됐다며 “장관 보고가 논의의 시작이 아닌 결론이 되고 대통령의 ‘조속한 시행’이라는 지시로 마침표를 찍어 교육 주체를 배제하는 정책 강행은 헌법상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문제”라고 짚었다.

장애 아동과 발달 수준이 느린 아동들에게 끼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장애영유아보육교육정상화추진연대 조선경 대표는 “2020년 기준 초등학교를 유예하는 아이들은 2만명이 넘는다. 아이가 제 나이 또래와 함께 생활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자녀의 부모는 되려 어린이집 하위반 편성을 원하고, 이런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현재도 특수학교 체제가 중증장애나 자폐를 가진 아이들이 학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간 장애아를 방학 때에는 맡길 곳이 없어 함께 데리고 일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초등학교에 더 빨리 가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집회에 참가한 유치원·어린이집 교사들과 학부모들도 <한겨레>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현재 임신 중인 서울 경기도의 9년 차 유치원 교사 임유상(35)씨는 “아이가 올해 태어나면 나도 이 정책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며 “이 중요한 개편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학부모와 교사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은 큰 문제였다. 임기 초 대통령이 멋대로 정책을 밀어붙이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5살·7살 두 딸을 키우는 아버지도 “만 5살도 발달 수준에 따라 그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아이한테 두려워서 이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학교를 가는 7살 딸만 해도 초등학교에 간다고 하면 떨리고 불안해하는데 (조기입학할) 5살 둘째는 어떨지 싶다”고 했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이효재(7)군과 충청남도 천안에서 집회에 온 엄마 모태희(42)씨도 “아들에게 현 상황을 말해주니 어린 동생들이 노는 시간도 짧은 학교에서 어떻게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더라”라며 “놀이 교육 과정으로 바뀐 지도 몇 년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공부를 해야 하니 일찍 학교에 보내라고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범국민연대는 현재 만 5살 초등 입학 추진 철회를 요구하는 반대 서명을 진행중이다. 참여자는 이날 오후 기준 13만 명을 넘어섰다. 단체는 오는 5일까지 릴레이 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만5세 유아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영유아 발달권을 침해하고 경쟁교육 부추기는 만5세 유아 초등취학 학제개판안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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