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외감법, 4년이면 실효성 논쟁에선 벗어나야 했다

권유정 기자 2022. 8. 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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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도입으로 공인회계사들 몸값이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공인회계사회(KICPA, 이하 한공회)는 더 이상 이익 단체가 아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단체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고객, 회원과 협력하고, 공익에 기여하는 공인회계사회를 만들어가겠습니다.”

김영식 한공회 회장은 지난 6월 여의도에서 열린 제68회 한공회 정기총회에서 제46대 회장 당선 소감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2020년 6월부터 한공회를 이끌고 있는 김 회장은 오는 2024년까지 2년 더 회장직을 맡게 됐다. 그는 2016~2020년 동안 한공회를 이끌었던 이명박 정부 시절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중경 회장에 이어 취임했다.

전임 회장과 마찬가지로 연임에 성공한 김 회장이 마냥 축배를 들기보다, 자기성찰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 데는 이유가 있다. 올해로 신(新)외부감사법이 도입되고 햇수로 4년차에 접어들었다. 신외감법은 회계 개혁이라는 거대한 명분을 갖고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표준감사시간제 등을 주축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점차 당위성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는 연초부터 기업에서 횡령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또 한 차례 실효성 논쟁에 불을 붙였다. 신외감법은 2015년을 전후로 발생한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회계 투명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2018년에 도입됐다. 만약 신외감법이 실제로 회계 투명성을 향상시켰다면 지금처럼 반복되는 횡령 사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그동안 한공회를 비롯한 회계업계에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하는 순위를 회계 투명성 향상의 근거로 제시했지만, 올해로 그 순위마저 반락하면서 더 이상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하게 됐다. 한국의 회계투명성 순위는 2017년 63개국 중 63위 꼴찌에서 2018년(62위), 2019년(61위), 2020년(46위)까지 4년 연속 상승했지만, 지난해 다시 53위로 밀려났다.

물론 최근에 발생한 기업 횡령 사고 대부분이 직원의 개인 일탈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부감사인보다는 기업 내부통제시스템에 책임을 묻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철저한 의도로 계획된 개인의 일탈을 기업 스스로 잡아내는 게 쉽지 않겠지만, 인사, 문서관리 등 허술한 내부통제가 총체적인 부실로 이어졌다는 점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외부감사의 본질은 횡령 같은 회계 부정을 발견하는 데 있지 않다. 횡령 여부만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부정(fraud)감사’라는 별도 절차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이 작성한 재무제표를 형식적인 절차(이른바 날림감사라고도 한다)에 따라 확인하는 행위에 가까운 한국의 감사 특성을 감안하면 부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주요 항목 외에 모든 항목을 낱낱이 살펴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다.

외부감사를 감리하는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으로 회계 부정을 막아내기란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당국에는 3만 곳이 넘는 외부감사 대상 회사의 사업보고서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감리할 물리적 시간이나 인력 여건이 부족하다. 지금의 일벌백계(一罰百戒)식 감리가 최선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감사인들 사이에선 이를 두고 ‘재수가 없으면 걸리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한공회를 비롯한 회계업계가 설령 기업 횡령 사고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피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계기로 재부상한 신외감법 실효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답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다. 신외감법으로 절대적인 감사 보수와 시간이 늘어난 건 온갖 수치로 증명이 되지만, 회계 투명성이나 감사 품질이 개선됐다는 걸 입증할 수단은 여전히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다.

신외감법 도입 이후 재계에서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감사 보수와 시간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며,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감사보수는 유가증권 상장사는 1억100만원, 코스닥 상장사는 1억200만원으로 2년 전인 2019년보다 18~22%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평균 감사시간은 유가증권 상장사(4333시간), 코스닥 상장사(1417시간) 모두 12~19% 증가했다.

아직도 마땅한 대답이 없다면 속도를 낮추고, 제도 전면 손질을 고민하는 게 맞다. 당국과 업계에선 비판 여론을 의식하고, 신외감법을 개정한다는 의지를 드러내긴 했지만, 신외감법 강도나 적용 범위가 동시에 커지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조치다. 정부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는 상장사는 매년 늘고 있고, 당장 내년에는 표준감사시간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함께 신외감법을 이루는 주요한 축 중 하나인 내부회계관리제도가 확대 적용된다. 제도 도입 초기라는 변명을 늘어놓는 건 4년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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