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사드 3불 이행하라" 압박에..정재호 주중 대사 "안보 주권 존중해야"
정재호 신임 주중 대사는 1일 취임 일성으로 상호 존중 정신에 기반한 한·중 관계 발전을 꼽았다. 최근 중국 정부가 윤석열 정부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3불 이행을 요구하고 한국의 미국 주도 반도체 동맹(칩4) 참여를 견제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는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가 친중 굴종 외교를 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정 대사는 한국과 중국에서 상대국을 향한 반중·반한 정서가 확산하는 상황도 문제로 지목했다.
정 대사는 이날 베이징 주중 대사관에서 열린 제14대 주중 대사 취임식에서 “새로이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향후 한·중 관계의 발전에 있어서 상호 존중의 정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상호 존중은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도 기재된 핵심 원칙인 만큼, 앞으로 양국이 서로의 안보 주권, 민생, 그리고 정체성을 존중하는 그런 관계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이 중 안보 주권 언급은 지난달 27일 중국 정부가 윤석열 정부에 직전 문재인 정부의 ‘사드 3불 정책’을 지킬 것을 요구한 데 대해, “우리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는 우리 정부 입장을 재차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0월 중국 정부에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하지 않으며 △미국 미사일 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3불) 입장을 밝혔다. 중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밝힌 사드 3불 입장을 사실상의 약속, 합의로 받아들인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사드 3불은 한국의 안보 주권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장관은 “3불 정책은 우리가 중국과 약속하거나 합의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의 안보 주권과 관련된 사안이라 당연히 우리의 판단으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한국과 약속을 했으니 지켜라 하는 건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사드 3불이 구속력 있는 약속이나 합의가 아니란 문재인 정부 입장과 결을 같이 한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27일 윤석열 정부를 향한 경고성 메시지를 냈다. 당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새 관리(윤석열 정부)는 과거 빚(잘못)을 무시해선 안 된다”며 “이웃 나라(중국)의 안전과 관련된 중대하고 민감한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은 계속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고 근본 해결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전 정부의 정책을 엎지 말고 사드 3불을 이행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으로 제시했을 때부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년을 맞은 해다. 정 대사는 “이제는 다가올 30년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라며 “공동 이익에 기반한 협력 동반자의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한쪽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일방적 관계를 거부한단 뜻으로 해석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양국 간 안정적 소통을 강조했다. 문제가 발생하거나 위기 시에도 닫히지 않고 소통이 가능한 경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북한 핵실험 등 안보 긴급 상황에서 중국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일각의 지적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또 양국 관계 내실화를 다지겠다고 했다. 가까운 이웃이자 역내 주요 파트너인 중국과의 공동 이익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경제 협력, 북핵 문제, 공급망, 보건, 미세먼지 등 여러 이슈에서 바람직한 협조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정 대사는 한국과 중국 국민의 상호 인식 악화를 양국 간 가장 큰 문제로 지목했다. 정 대사는 “상호 인식의 개선 없이 양국 관계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며 “양국 국민 간 우호 정서를 증진시키겠다”고 했다.
정 대사는 형세와 국면이 공히 결코 간단치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며 대사로서 국익 수호 임무를 다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한·중 사드 갈등, 미·중 대립 격화, 북핵 위협 등 한국을 둘러싼 복잡한 국제 정세를 고려한 발언으로 읽힌다.
정 대사는 지난달 19일 베이징 인근 톈진 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해당 항공편에서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톈진시에서 10일간 격리 후 지난달 29일 베이징으로 이동했다. 외국 대사는 다른 도시를 통해 중국에 입국했다 하더라도 수도 베이징으로 옮겨 관저에서 격리하는 게 관례지만, 정 대사는 중국 방역 정책에 따라 베이징으로 바로 이동하지 못했다.
정 대사는 오랜 기간 중국을 연구한 학자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겸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미중관계연구센터 센터장 재직 중 윤석열 정부의 첫 주중 대사로 지명됐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졸업 후 미국 미시간대에서 중국 정치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사회과학부 조교수, 서울대 중국연구소 소장 등을 지냈다. 정 대사는 “홍콩에서 종이 한 장으로 된 입경 허가증을 받아서 중국 땅을 처음 밟은 것도 수교(1992년) 4개월 전이니,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30년의 긴 시간을 한·중 관계와 같이 함께 호흡해 왔음을 상기하면서, 이 자리에 선 지금 가슴이 많이 떨린다”는 개인적 소회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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