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아니었어? 요즘 직장인들 '이것'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긱스]

이시은 2022. 8. 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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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그 사람 업무 스타일 어때?"
모 업체 직원이 전 직장 동료에 대해 이렇게 물어옵니다. 참 난감한 경우입니다. 지나치게 솔직히 얘기하려니 전 동료의 취업길을 방해하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그렇다고 마냥 미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평판조회는 그동안 '음지'에서 이뤄졌고 이런 응답자들의 고민들 때문에 그 정확도도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간 평판 조회가 경력직 채용의 한가지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평판조회 방식이 점점 체계화되고 이를 도입하는 기업도 늘고 있습니다.  
 신생 스타트업인 스펙터는 MBTI와 비슷한 문답 방식의 평판조회 서비스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고객이 1800여 기업에 달합니다. 윤경욱 스펙터 대표는 "채용 문화는 결국 평판 조회를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평판조회는 외부인의 눈을 통해 현재의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는 지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윤 대표를 만나 평판조회 서비스의 세계를 들여다봤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평판 조회는 '맞고 틀리고'가 없다

“평판은 근본적으로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회사와 얼마나 잘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쓰여야 해요. 지원자가 좋은 기업을 잘 만나 오래 일하도록 하는 것이 ‘스펙터’ 플랫폼의 존재 이유입니다.”

윤경욱 스펙터 대표


‘평판 조회가 정말 사업이 되는가’는 의심 섞인 질문에 윤경욱 스펙터 대표는 생각지 못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사실 이직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이들에게 평판 조회란 막연한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하는 복잡한 대상입니다. 과거 동료가 나를 평가한다는, 구조 자체가 불러오는 불가항력일 것입니다. 스펙터의 국내 고객사가 1800개에 달한다는 데, 그 많은 회사의 지원자가 과거 다녔던 회사에다 어떻게 조회를 할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정말 제대로 된 평판을 플랫폼이 얻어낼 수 있을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스펙터의 기본 구조는 먼저 기업이 자사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스펙터 상 평판 등록을 요청하면서 시작됩니다. 기업의 요청을 받은 지원자들은 ‘평판 등록요청’을 눌러 자신의 전 직장 동료들에게 평판 작성 의뢰문을 보내게 됩니다.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보내져 온 알람을 통해 곧바로 입력할 수 있죠. 의뢰를 받은 동료들은 객관식 31문항, 주관식 4문항, ‘비밀코멘트’ 1문항 등을 기재하게 됩니다. 굳이 기업이 작성을 권하지 않아도, 지원자가 스스로 동료들과 스펙터 상 내용을 채워 평판 조회를 미리 대비할 수도 있습니다.

항목을 톺아보면, 최근 인기를 얻은 MBTI 검사가 언뜻 떠오르기도 합니다. ‘내향적/외향적, 어느 쪽에 더 가까운 편인가요?’ ‘내근과 외근, 무엇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인가요?’ 등 문항이 그렇습니다. 답변은 ‘보통’을 중심으로 대부분 지원자 성향이 더 가까운 쪽을 클릭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스펙터는 단순한 성격 검사보다는 ‘일’에 더 초점이 맞춰집니다. ‘다른 사람이 반대의견을 낼 경우, 어떻게 반응하나요?’란 항목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지, 의견을 수용하는 편인지 따져 묻기도 하고 업무처리가 꼼꼼함에 방점을 두는지 속도감에 무게를 두는지도 묻습니다. 주관식 항목에서는 강점과 단점을 모두 입력하도록 하며, 함께한 순간 중 최고의 순간과 아쉬웠던 순간을 기재하는 란도 있습니다. 인사권자 직책 인물이 정보를 입력할 경우 항목은 과거 인사평가를 중심으로 다소 달라집니다.

스펙터의 평판 조회 입력 항목의 일부. 과거 일했던 동료의 요청을 받으면, 증빙서류를 제출하고 항목을 채울 수 있다. 정해진 답이 없이, 동료의 성향과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란을 체크하는 구조다. 스펙터 사용 화면 캡처.


핵심은 지원자들의 과거 경험을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지원자의 경험과 성향을 세밀하게 보여주면, 기업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상을 확인해가는 구조인 셈입니다. 윤 대표는 “기업이 공략해가는 산업군이 다양해지고, 원하는 인재가 세분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시간관념’에 대해 과거 기업들은 조직이 주문한 철저함을 우선시하는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정보기술(IT) 업종에선 주체적이고 유동적으로 시간을 쓰는 인재를 선호하는 곳도 많다”고 했습니다.

항목이 많고, 평판 작성자도 자신의 정보와 증빙서류를 입력하다 보니 함부로 거짓을 입력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또 인증 절차가 까다로운 점이 오히려 정보의 진실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됐다고 합니다. 윤 대표는 “평판 작성자는 사실상 지원자의 요청으로, 지원자를 위해 인증 절차를 거쳐 항목을 작성하는 사람들”이라며 “본인 정보까지 인증하고 나면 ‘기왕 이렇게 된 것, 제대로 된 평가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본인이 가까운 사람에게만 조회를 요청하면 제대로 된 정보를 알 수 없지 않은가’는 물음에 윤 대표는 “스펙터의 입력 항목에는 옳고 그름이 없기도 하고, 다음 커리어로 나아가려는 지원자를 위해 복잡한 설문을 써줄 전 직장 사람이 4명만 넘어가도 기업은 이 내용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4명은 스펙터 이용자들이 가진 1인당 평균 평판 조회 결과라고 합니다.

 실패로 '임팩트 아이템' 찾은 물리학도

윤 대표는 학창 시절 우주비행사를 꿈꿨습니다. 그는 고려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물리학은 학문의 기본 중의 기본이고, 세상을 돌아가는 이치를 탐구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특히 천체물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어릴 적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인 최초 우주인 선발에 지원했던 2006년은 그에게 변곡점이 된 해였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할 정도의 체력을 갖고 있던 그는 시력 때문에 면접도 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리학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졌습니다. “미국 드라마 ‘빅뱅 이론’에 보면 천재들이 나오잖아요. 물리학 공부하는 친구 중엔 정말 천재들이 있어요. 저도 공부를 못하진 않았지만, 다른 꿈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공계와 반대 지점에 있는 경영학은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이공계생들이 기술을 발견하고 제품을 만들면, 이를 시장에 팔아 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영’이 핵심 가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남은 대학 생활은 학내 경영학회 활동, 베인앤컴퍼니 등 글로벌 컨설팅 펌 인턴 등으로 채웠습니다. 경영자가 되기 이전, 경험을 쌓으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첫 직장은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컨설팅 기업으로 꼽히는 액센추어였습니다. 인턴 과정을 마칠 때마다 받은 피드백을 정리하던 전략이 입사 원동력이었습니다. 윤 대표는 “거쳤던 회사들의 피드백을 꼼꼼히 정리하면 한 회사에 100가지씩은 나왔다”며 “지금 보면 세밀한 내용도 많은데, 예를 들어 ‘발목 양말 신지 말라’는 항목까지 들어있다”고 전했습니다. 꼼꼼함을 내세운 그는 풀어야 할 문제가 복잡했던 산업군과 잘 맞았습니다. 특히 이해관계자가 많이 얽히고설키는 유통업계 프로젝트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윤 대표가 컨설팅 펌 인턴 시절 작성했던 지적 사항 개선표의 일부. '정해진 시간은 반드시 엄수하기' '소속 회사가 원하는 복장 갖추기' 등 기본적 요소부터 '일할 때는 정장재킷 벗기'와 같은 세밀한 내용까지 문서화해서 정리했다. "한 회사에만 100개씩 관련 내용을 기록했다"고 했다. 윤경욱 대표 제공.

2년여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2015년 본격적인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흥미를 가졌던 유통업계에서 공동 구매 플랫폼이란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첫 창업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5년간 운영했던 첫 스타트업에서 그는 몇 가지 교훈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매크로 트렌드’는 그가 배운 핵심입니다. 당시 윤 대표가 운영했던 공동구매 플랫폼은 대학가 고객을 대상으로 야구점퍼 등 맞춤형 단체복을 팔던 업체였습니다. 단체활동이 줄어들고, 개인의 의사가 중요시되는 대학가 환경 변화는 그가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풀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코로나19가 예상보다 장기화하며 이런 변화가 더욱 커진 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기업가치를 끌어내는 방법도 다시 고민하게 됐습니다. 윤 대표가 첫 업체를 운영하며 채용했던 인력은 300명이 넘습니다. 그는 “당시 운영하던 사업을 키우려면 인력이 계속해서 늘어야만 했다”며 “20명 이하의 인력으로 1000억원대 기업가치가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에 ‘임팩트(충격)’를 줄 수 있는 아이템이란 기준을 수립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진출도 쉬워야 했습니다. 윤 대표는 “첫 스타트업은 해외 진출을 서둘러 매출액의 25%가 중국에서 났는데, 중국의 공동구매 문화가 너무나 다르다 보니 아예 다른 스타트업을 하나 더 운영하는 것 같았다”며 “국내와 동일한 플랫폼이나 상품이 국가를 바꿔도 효과를 낼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고 전했습니다.

공동구매 플랫폼 '타운어스'를 운영하던 타운컴퍼니 동료들. 윤 대표가 2015년 처음 창업한 회사다. 5년 간 회사를 운영하며 중국 등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지만, 결국 코로나19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폐업했다. 당시 직원들을 뽑고 떠나보낸 과정은 현재의 스펙터를 만들었다.

 "평판 조회, 명예를 증명하는 방법"

스펙터는 첫 실패 후 약 1년 만인 2021년 1월 정식 론칭됐습니다. 첫 회사 동료들이 함께해 인력 문제는 해결됐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빨랐습니다. 그는 “직원을 많이 뽑고 또 떠나보내며, 지닌 능력에 비해 부족한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를 목격했다”며 “평판 조회가 있었다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겠다 싶어 아쉬웠다”고 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지고, 직원들이 많이 이직할수록 이런 생각은 커졌습니다. 고민은 곧바로 새 창업 아이템이 됐습니다. “준비 기간 동안 61명의 인사 담당자와 업체 대표들을 사전 인터뷰하며 확신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스펙터는 대표자나 임원진 등 인사권자와 팀장, 후배 등 동료들의 평가를 구분해서 받는다. 평판 항목도 조금씩 다르다. 다만 정해진 답이 없이 사람 자체의 성향을 보여준다는 방향 자체는 같다. 스펙터 제공.


현재 확보한 평판 데이터베이스(DB)는 10만 개 상당, 회원 수는 약 2만 5000명에 달합니다. 지원자 평판은 이미 등록된 경우면 10초, 등록이 필요한 경우 평균 1.6일 이내 채워지고 있습니다. 기업이 특정 지원자의 평판을 조회하면 인당 3만원을 받습니다. 5회 이상 결제한 사업체만 고객사 수로 계산하는데, 이런 곳이 1800개가 넘는다는 설명입니다. 카카오, 롯데손해보험, IBK기업은행 등은 주요 고객사로 꼽힙니다. 서비스 이탈률은 현재 3% 정도입니다. 반면 누적 회원 수는 매월 평균 20%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9억원 규모 프리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스트롱벤처스, 패스트벤처스 등이 투자했습니다. 하반기에는 30~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도 나설 예정입니다.

최근에는 ‘마이스펙터’ 서비스 론칭 준비에 한창입니다. 윤 대표는 “수상 실적이나 동아리 활동 실적 등 이력서에서 증빙이 어려운 항목이 현재도 많다”며 “나와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이 내 이력에 대해 평판을 남겨주는, 확장된 이력서를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업 평가 시스템도 개발 예정입니다. 퇴사자들이 역으로 근무했던 회사의 평판을 남기는 구조입니다. 윤 대표는 “블라인드, 잡플래닛 등 기존 기업 평가 플랫폼과는 목표하는 바가 다르다”며 “현재 지원자 평판 조회 시스템처럼 기업이 퇴사자 평판을 수집해 자신들과 더 잘 맞는 인력을 뽑을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 등 해외 진출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윤 대표는 끝으로 ‘명예’를 강조했습니다. “회사로 지원자분이 전화가 온 적이 있어요. 클레임일까 생각했는데,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평가받아본 게 처음이라고. 내가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 같고,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고요. 스펙터는 내가 명예롭게 살아왔던 인생을 증명하는 플랫폼입니다. 진짜 좋은 사람들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참 한 가지 더

스타트업 전선 뛰어든 물리학도들

게티이미지뱅크

스타트업 업계에는 '물리학도 창업가들'이 있습니다. 일견 별다른 관계가 없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문제를 풀어내는 데 익숙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세상에 없던 혁신을 만들어야 하는 스타트업과, 자연법칙을 무수한 노력으로 풀어내야 하는 물리학의 속성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물리학과 출신 창업가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업체 에임블은 김현진 최고경영자(CEO), 이충기 최고기술책임자(CTO), 이창우 최고지식임원(CKO) 등 공동창업자 모두가 서울대 물리학 박사 출신입니다. 박용근 모토큐브 대표는 의공학을 전공했지만, KAIST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3차원 영상 측정이 가능한 '홀로그래픽 현미경'을 개발하고 2015년 토모큐브를 설립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휴대용 무선 초음파 진단기기를 개발한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입니다.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선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대표적입니다. 이 대표는 KAIST 물리학 박사 출신입니다. 해외엔 아마존의 설립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있습니다. 그는 미 프린스턴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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