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목·손 선풍기 '전자파' 안전하다지만..시민단체 "노출 시간 따져야"

이정호 기자 2022. 8. 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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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휴대용 목·손선풍기 전자파 문제 조사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 손선풍기의 전자파를 측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시민단체에서 목에 걸거나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용 선풍기에서 방출되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과 관련해 정부가 자체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검사 대상이 된 전 제품에 대해 “인체보호 기준을 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시민단체는 전자파 노출 시간을 감안하지 않아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고 반박했다.

저강도 전자파가 인체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 어떤 피해가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전자파를 둘러싼 우려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시중에 유통 중인 휴대용 목·손 선풍기 20종을 대상으로 전자파를 측정했더니 검사 대상이 된 모든 제품이 인체 보호 기준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측정한 전자파 수준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기정통부가 이번 검사를 시행한 건 지난달 26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휴대용 목·손 선풍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측정 결과를 공개해 인체 위험성을 경고한 것을 검증하기 위해서다.

과기정통부의 전자파 측정 대상이 된 20종의 휴대용 선풍기에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검사 대상으로 삼은 휴대용 선풍기 10종(목 선풍기 4종, 손 선풍기 6종)이 모두 포함됐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휴대용 목·손 선풍기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국제적으로 권고된 인체 보호 기준의 2.2~37%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인체에 안전하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의 인체 보호 기준은 국제비전리복사보호위원회(ICNIRP)가 정한 기준에 따른다. 주파수 60Hz(헤르츠)에서 전자파 세기가 833mG(밀리가우스)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833mG가 전자파에 장기적으로 노출됐을 때를 감안하지 않은 기준이라는 점이다. 이는 단기간 노출됐을 때 몸에 이상이 올 만한 높은 수치이다. 낮은 강도의 전자파에 오래 노출됐을 때 인체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낮은 강도의 전자파에 장기간 노출되는 상황이 위험하다는 연구는 이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02년 가전제품이 방출하는 3~4mG의 전자파에 대략 10년 이상 노출되면 소아백혈병 발병률이 2배 커진다고 경고했다. IARC는 전자파를 ‘발암가능물질(2B)’로 분류한다.

IARC 기준을 준용하면 목·손 선풍기에서 나오는 전자파 강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검사한 목 선풍기에서는 전자파의 평균값이 188.7mG, 손 선풍기에서는 464.44mG가 나왔다. 한국 정부 기준인 833mG에는 못 미치지만, 3~4mG를 기준으로 한 IARC 관점에선 훨씬 높다.

이 때문에 몇몇 나라에선 한국보다 전자파 기준을 크게 낮춰서 운영하고 있다. 전자파로 인해 혹시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미리 대비한다는, 이른바 ‘사전 예방주의’에 따라서다. 스웨덴의 전자파 기준은 2mG, 네덜란드는 4mG, 스위스는 10mG이다.

하지만 정부는 전자파에 저강도로 장기간 노출된다고 해서 인체에 문제가 나타난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섣불리 전자파 기준을 낮출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날 과기정통부 브리핑에 나선 백정기 충남대 전파정보통신공학과 명예교수는 “현재 인체 보호 기준은 단기 노출이든 장기 노출이든 과학적으로 입증된 연구 결과가 다 반영이 돼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우려는 여전하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정부의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이날 반박 자료를 내고 “과기정통부가 말하는 ICNIRP 참고 기준(833mG)은 어떤 순간에도 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신경과 근육 자극, 망막에서의 섬광 등 급성 영향을 예방하기 위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호르몬 영향, 인체 항상성 교란 등에 장기간 노출돼 일어나는 암 같은 만성질병 위험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적용할 수 없다”며 저강도 전자파라도 노출 시간을 고려할 것을 지적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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