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다~
두 사람이 움직였다. 흡사 매와 독수리 같았다. 그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시범을 보이던 강사가 우리를 불렀다. “자, 이제 여러분들 차례입니다. 모두 앞으로 나오세요.”
얼마 전 지역 가족센터 프로그램에 다녀왔다. 가족센터는 지역주민, 다문화 가족 상담, 교육, 돌봄 등 가족과 관련된 문제를 종합적으로 상담하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내가 거주하는 마포구의 가족센터는 카톡으로 프로그램을 알려준다. 문자를 받으면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재빨리 살펴보게 된다. 이번 역시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보고 있다가 한 제목에 꽂혔다.
‘1인 가구 셀프 보디가드 프로그램’
오, 이거야말로 꼭 필요하지 않겠나. 뉴스나 신문에선 여전히 흉흉한 사건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그럴 때면 나도 겁나는데, 1인 가구라면 오죽할까. 얼마 전, 여성친화도시 구민 참여단으로 지역을 조사하다 보니, 예전보다 CCTV나 안심벨 같은 안전장치 등이 곳곳에 많아졌다는 걸 알게 됐다. 여러 사회 안전망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으나, 내 자신은 내 스스로 지킬 필요가 있겠다.
셀프 보디가드 프로그램은 참가자(1인 가구 및 예비 1인 가구)에게 3회 차에 걸쳐 방어와 반격, 위험 상황별 대처 방법, 방어하는 동작 등을 알려준다. 물론 3회 교육으로 고수가 되지는 않는다. 맘은 공중을 날아도, 몸은 땅에 붙어 있을 일반인이 더 많을 테니까. 그렇다 해도 최소 위험한 그 순간 만큼은 모면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면 낫지 않을까.
수업은 15명 정도의 참가자가 함께했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퇴근하며 들른 20, 30대 회사원이 많아 보였다. 담당자는 이 프로그램 반응이 좋아 다시 열었는데, 첫 대면 수업이라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머쓱한 표정으로 앞에 나온 참가자들은 짝을 짓거나 강사와 1대1로 연습을 했다. “저 지금 맞게 하고 있어요?”, “선생님 하실 땐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잘 모르겠는데요.” 참가자들은 약한 소리와 달리, 열심히 동작을 익혀 나갔다. 그러는 동안 강당에선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짝을 맞춰 공격자와 방어자로 만나며 서로 인사도, 말도 나누게 된다. 나와 짝이 된 여성은 회사원인데, 1인 가구 프로그램에는 처음 참여해본다고 했다. 여러 가족센터 프로그램을 살펴보다 유용할 거 같아 등록했는데, 무엇보다 용기가 나는 듯해 좋다고 했다. 물론 덩달아 나까지 활력이 솟았다.
강사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쓰이는 방어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이 동작은 위험할 때, 방어로만 쓰는 거예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자칫 공격이 될 수 있으니, 정말 긴급한 순간에서만 사용하라는 당부였다.
그래서 주먹이 아닌 손바닥으로 막는 방법을 배웠다. 또 뭣도 모르고 주먹을 내밀다간 손가락이 골절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주먹 쥐는 법도 새로 익혔다.
“어깨 힘 빼세요. 가볍게 ‘투툭’ 하듯 팔을 뻗으시고요. 아무래도 팔보다 몸의 반동을 이용해야 막는 힘도 세지겠죠?”
신체 중 생각보다 단단한 곳도 알게 됐다. 손바닥과 팔 옆 부위는 의외로 강하다. 더욱이 공격이 아닌 강력한 방어수단이라니 더 좋다. 방어기술을 익히니 안심됐다고나 할까. 예상보다 재미있었다.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했을까.
“2020년 통계청 조사상, 전국의 1인 가구가 약 32%나 된다고 해요.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범죄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마포구가족센터 담당자는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를 들려줬다. 1인 가구 참가자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까? “참여하게 된 된 동기도 다양하더라고요. 체구가 왜소해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호신술을 배우고 싶다며 신청한 분도 계시고요. 사소한 동작이라도 쉽게 체득할 동작을 배우고도 싶어 하셨고 뒤에서 덮치거나 이런 저런 상황에서 대응하는 법이 궁금하다는 의견들도 있었어요.”
실제 1인 가구인 내 친구는 당일 사정이 생겨 프로그램을 듣지 못했지만, 우리는 안전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었다.
올초 정부는 1인 가구 사회관계망 형성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에 청년층과 중장년층, 고령층 1인 가구에게 지자체 가족센터를 통해 자기돌봄 관계기술 및 맞춤형 프로그램, 소통 모임 등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고 넓어질 듯싶다. 그리고 이미 전국 여러 센터에서는 다양한 1인 가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끝난 강당은 불이 꺼져 깜깜했다. 그렇지만 강의 전, 두려웠던 어둠과는 좀 달라 보였다. 조금이나마 방어하는 법을 알았고, 공감하는 사람들과도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1인 가구인 오늘 참가자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모쪼록 증가하는 1인 가구를 위한 제도가 많아지길 바라본다. 더 나아가 평소 일상에서 안전을 체감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최상이 아닐까.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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