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이 던진 '7세 입학'..현실화 과정은 '산 넘어 산'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교육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 방침에 현실을 모르는 '졸속'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교육·보육 관련 시민사회 단체들은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를 구성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반발이 거세다. '백년지대계'를 사회적 논의과정 없이 결정한 데다, 과연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해결책이 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교육부가 2025년부터 현재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 나이를 만 5세로 내리겠다는 학제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대로 진행된다면 1949년 교육법이 제정된 이후 76년 만에 개정이 이뤄지는 셈이다. 교육부는 사회적 양극화의 초기 원인으로 '교육 격차'를 지목하며,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겨 사회적 약자 계층이 빨리 의무교육을 받음으로써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론화 과정 없이 갑작스럽게 나온 발표에 '졸속'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오래된 논제이긴 하지만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부의 일방적인 발표가 나온 데 따른 반발이 크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논의과정을 거친 다음 추진하는 게 좋은데, 정책을 추진하는 순서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입학 연령은 부모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여서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학제 개편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하나로 검토됐지만 실효성이 낮다는 이유로 추진되지 않았다. 송 교수는 "입직 연령을 앞당기기 위해 학제 개편 논의가 오랜 기간 돼왔다"면서 "인력이 사회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대학 졸업 연령을 만 22세에서 만21세로 앞당겨 이 문제를 해소하자는 논리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무교육 1년을 유치원에서 하자는 방안도 논의됐었는데, 유치원 반 편성 문제, 교사 처우 문제, 순환 근무 문제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으니 교육부가 입학 연령을 앞당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정책에 반대하는 이해당사자가 너무 많아 실현 가능성이 낮아보인다는 분석이다. 송 교수는 "(정책을 추진하기엔) 전선이 너무 넓다"고 지적했다. 2008년부터 2022년 사이에 출생한 아이의 부모들과 유치원 관계자, 초등학교 교사 등 설득해야할 이해당사자가 굉장히 많다는 설명이다. 그는 "입직 연령이 낮아짐으로써 인력문제가 해소되고 교육 격차도 좁혀지는 등 사회적 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분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러나 이득을 보는 당사자는 사회 전체이니까 찬반을 얘기하기 어렵지만, 반대하는 이해당사자들은 매우 분명하다"면서 "정책은 찬성이 많고 반대가 적어야 공론화됐을 때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학 연령을 낮추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서 교육부 방안대로면 각 학년에 인원이 4분의 1씩 추가되는데, 부모들 사이에 '왜 우리 아이만 피해를 보느냐'는 반대 여론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만 5세 아이들을 뺏기게 되면 유치원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각 학년에 4분의 1만큼 늘어난 아이들을 감당해야 하는 초등학교 교사들도 강하게 반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는 이날 오후 2시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만6세에서 만5세로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낮추는 것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대통령 공약에도 없었고 인수위의 논의도 없었고, 교육계 내부의 논의나 요구도 없었던 소식을 들은 학부모와 교육계 모두 황당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하루 만에 장관의 보고와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대한민국 학제가 개편되는 기가 막히는 광경을 보게 됐다"며 "학부모, 시민, 영유아교육·보육계는 범국민연대 모임을 결성해 학제 개편안이 철회될 때까지 강력하게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같은 정책 강행은 헌법 제31조 4항이 정하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라면서 "20년 뒤에 있을 산업인력 공급 체계를 위해서 만5세 유아를 초등학교 책상에 앉혀서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것은 결단코 교육적 결정이라고 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현 교육 체제가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는 원인인 고교 서열화와 대학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비전은 제시하지 않은 채, 단지 입학 연령을 낮추어 교육 격차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근본을 모르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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