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챔피언이자 시민운동의 선구자"..'NBA 전설' 빌 러셀 타계

임보미 기자 2022. 8. 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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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코트의 안과 밖을 모두 탈바꿈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 프로농구(NBA)의 전설 빌 러셀이 향년 88세로 타계했다.

러셀의 유가족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그의 사망을 발표했다.

코트 안에서 러셀은 고교, 대학 시절은 물론 NBA, 올림픽(1956 멜버른)에서 주장으로 소속팀을 모두 우승시켰다.

1969년 은퇴 후 40년이 지난 2009년 러셀은 자신의 시그니처인 '염소수염'이 하얗게 센 모습으로 다시 코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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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뉴시스
농구 코트의 안과 밖을 모두 탈바꿈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 프로농구(NBA)의 전설 빌 러셀이 향년 88세로 타계했다. 러셀의 유가족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그의 사망을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의 삶이 이날 끝났다”고 전했다. 러셀은 선수, 감독은 물론 시민권 및 인권운동가로서 미국 사회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13시즌(1956~1969) 동안 보스턴의 11차례 챔피언십 우승을 이끈 그는 1975년 선수로 NBA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마지막 두 시즌은 선수 겸 감독으로 우승한 그는 2021년에는 감독으로서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는 북미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흑인 감독이기도 하다.

코트 안에서 러셀은 고교, 대학 시절은 물론 NBA, 올림픽(1956 멜버른)에서 주장으로 소속팀을 모두 우승시켰다. 키만 크고 느린 포지션으로 여겨지던 ‘센터’ 포지션에서 그는 민첩함을 앞세운 블록샷과 리바운드로 보스턴의 수비 중심의 속공농구를 이끌며 동시대 NBA 팀들을 압도했다.

1969년 은퇴 후 40년이 지난 2009년 러셀은 자신의 시그니처인 ‘염소수염’이 하얗게 센 모습으로 다시 코트에 섰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NBA 최우수선수(MVP) 트로피 시상을 위해서였다. NBA는 러셀을 기려 이 때부터 파이널 MVP 명칭을 ‘빌 러셀 MVP’로 바꿨다.

러셀이 데뷔한 1956년까지만 해도 그는 팀 내 유일한 흑인 선수였다. 당시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보스턴 외곽에 있던 그의 집의 공격을 일삼았고 집 담벼락에는 흑인혐오 문구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러셀은 흑인 인권운동에 적극 목소리를 냈다. 1963년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에 참여했던 그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구절로 유명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연설 때도 맨 앞줄에 앉았다. 그는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한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미국 흑인 최초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1년 “모든 이들의 권리와 존엄을 위해 싸운 인물”이라며 러셀에게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러셀의 사망에 “우리는 오늘 거인을 잃었다. 러셀은 키뿐 아니라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남긴 족적도 컸다”며 “코트 안에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이었고 코트 밖에서는 킹 목사와 행진하고 알리와 연대한 시민운동의 선구자였다”며 추모의 뜻을 전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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