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그래프] (21) 성균관대 박민철 "코트 안팎 모두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다혜 2022. 8. 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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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고 뽑아 주세요" 2022 KBL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완생을 꿈꾸는 대학 졸업반 미생들의 농구 인생을 조명해본다.

[점프볼=정다혜 인터넷기자] 스물한 번째 미생은 성균관대 박민철(G, 187cm)이다. 발전을 위한 노력이 빛나는 박민철의 ‘미생그래프’를 살펴보자.

#농구인이 되는 과정
어릴 적 박민철은 농구를 했던 친형의 영향으로 농구를 접했다. 어머니를 따라 친형의 경기를 보러 다녔는데 처음엔 경기는커녕 홀로 장난감 갖고 놀기 바빴다. 경기장과 숙소에 자주 방문하는 박민철을 본 연가초 임혜영 코치는 "민철이 농구해야지"라며 장난스레 말했지만, 농구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 매번 거절했다.

무의식적으로 농구에 관심이 생긴 걸까. 여느 때처럼 박민철은 경기장에 들어섰고 임혜영 코치는 똑같은 말을 건넸다. 그의 대답은 "네!"였다. 그때부터 박민철은 장난감이 아닌 농구공을 잡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에 시작한 농구. 단체생활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었지만, 어린 박민철을 힘들게 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 또래 평균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갔던 탓에 체중 감량을 피할 수 없었던 것. 그는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도토리묵과 두부 등으로 식단조절을 하면서 운동을 했다.

두 달 동안 23kg 감량에 성공한 박민철. 체중 감량은 농구에, 특히 스피드에 큰 도움이 됐고 그해 유소년 대표팀에 합류해 국제 경기도 치렀다. 그는 중국팀과의 경기에서 당황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중국에 갔는데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선수들이랑 경기한다고 하더라고요. 키가 다들 너무 크고 무서웠어요(웃음)”.

중국에서의 경험을 뒤로하고 중학생이 된 박민철. 초등학생 때랑 다른 운동량에 버겁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력 향상을 위해 모든 훈련을 꿋꿋이 견뎌냈다. 색깔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코치의 조언에 농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많은 경기를 찾아보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중학교 3학년에 열린 2015 주말리그 왕중왕전을 회상하기도 했다. 이 대회가 시작되기 전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대회 직전에 생긴 부상이어서 출전이 쉽지 않았지만 진통제를 맞고 나섰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중학교 졸업하기 전 마지막 대회이기도 했고 농구를 그만둔다고 하는 동기들이 있었어요. 그 동기들이랑 뛰는 마지막 경기니까 부상인데도 참고 뛰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완강한 의지와 찬란한 성장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생이 된 그는 1학년 때부터 많은 출전 시간을 부여받았는데 퍼포먼스가 상당했다. 2016 중,고 주말리그 개막일 송도고와의 맞대결에선 20점 7리바운드 3어시스트 3스틸을, 제46회 추계전국남녀농구연맹전 예선 대전고와의 경기에선 더블더블(12점 12리바운드 2어시스트)을 기록했다.

이런 기록 뒤에는 노력이 숨어있었다. “1학년 때 잘하고 싶어서 1주일에 네 번 정도 새벽 운동을 하고 야간에도 끝까지 남아서 했어요. 체육관에 제일 먼저 오고 제일 마지막에 나가자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른 선수들이 안가면 갈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요”.

학년이 올라가면서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진 그는 코트 위를 휘젓고 다녔다. 두 자릿수 득점은 기본이었다. 리바운드 가담도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2018 한국중고농구 주말리그 왕중왕전 남고부 부산중앙고와의 경기에선 무려 36점 14리바운드 4어시스트 3스틸을 만들어냈다. 연장까지 이어졌던 경기에서 명지고를 8강으로 이끈 일등공신이 됐다.

그리고 이 능력이 결과물로 입증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3학년 마지막 대회인 제48회 추계전국남녀중고농구연맹전에서 우승과 함께 MVP로 선정된 것. 그는 6경기 동안 평균 22.8점 7.8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당당히 MVP 자리에 올라섰다.

우승은 또 다른 공부가 됐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그동안 후반에 점수가 벌어지면 포기하고 이기는 걸 못했는데, 코치님들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올 수 있게 잘 도와주셨다. 이렇게 노력하고 지면 아쉽지 않겠냐며 동기부여를 해주셨고 덕분에 이기는 농구를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쓰디쓴 순간, 미래를 자극하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맞이한 대학 생활. 1학년 박민철은 벤치에서 경기장을 바라보며 기회를 기다렸다. “형들 경기하는 거 보면 멋있고 응원하는 사람들, 팬들도 있으니까 더 멋있었어요. ‘나도 빨리 시합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그 길은 생각보다 순탄하지 않았다. 2학년 때 찾아온 발목부상 탓에 심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재활하면서 양쪽 근육 모양이 다르게 잡혀서 회복하는 데 반년 정도 걸렸어요. 그렇게 크게 다쳐본 적은 없어서 어떻게 재활을 하고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죠”.

고학년이 된 그는 저학년 선수들이 하나둘 경기에 투입되는 모습에 더욱 갈고 닦았다. 부상으로 뛰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새벽 운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번 대학리그 조선대전(5월 17일)에선 12점 3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로 팀 승리에 보탬이 됐고 지난달에 열린 MBC배 예선 조선대전(7월 15일)에선 11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 4스틸로 대학리그 플레이오프에서의 활약을 더욱 기대케 했다.

#넓은 무대의 환호성을 꿈꾸며
더 높은 비상을 원하는 박민철은 프로라는 넓은 무대에서의 경험을 갈망했다. “일단 프로라는 무대는 일차적인 최종목표잖아요. 달성하게 된다면 가슴이 벅차오를 거 같아요. 팬분들도 많이 계시고 잘하시는 선수들도 많으니까요. 넓은 무대에서 많이 깨지면서 배울 점도 많을 거 같고요. 재밌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는 코트 안팎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길 원했다. “코트 안에서나 밖에서나 인성과 실력 모두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게끔 하고 싶어요”.

노력이라는 땀방울로 농구 인생을 개척해온 박민철. 과연 그가 드래프트 현장에서 프로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_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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