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이준석·권성동..'이 사람'과 대립한 지도부의 '줄퇴장'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뿌리가 하나인데 투쟁할 것 없다."
지난 14일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권성동 원내대표가 장 의원이 주장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반대해 갈등을 빚고 있다는 풍문이 돌았다. 장 의원은 이에 대해 "뭐가 갈등이고 불화인지 모르겠다"며 "나는 사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권 원내대표와 당권투쟁을 벌일 것이란 정치권 일각의 전망을 반박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2주 뒤, 장 의원과의 갈등설이 일던 권 원내대표가 돌연 당대표 직무대행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후 국민의힘 지도부는 '비대위 체제' 전환을 예고했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부터 이번 비대위까지, 사실상 장 의원의 의중대로 정치판(判)이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에 여권 내에선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관계자) 장 의원의 '실세설'이 재부상하고 있다.
김종인 이어 이준석도…퇴장 당한 장 의원의 '敵'
장 의원 이름 앞에 '실세'가 붙기 시작한 건 지난 대선부터다. 당시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는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 '원톱 체제'였다. 장 의원은 김 전 위원장과 캠프 인선 등을 두고 의견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김 전 위원장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24일 선대위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경선 과정에서 후보와 가까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조금 오버하는 측면이 있어 불협화음이 생겨나고 있다"고 폭로했다. 사실상 장 의원을 비롯한 '윤핵관'에게 경고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당시 후보였던 윤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윤 대통령은 장 의원을 적극 두둔했다. 같은 날 윤 대통령은 전남 여수광양항만공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장 의원은 사실상 (당 경선) 국민캠프에서부터 상황실장을 그만두고 선대위에 아예 출근도 하지 않고 있다"며 "주변에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입장인데 무슨 '윤핵관'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후 장 의원과 김 전 위원장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1월5일, 윤 대통령은 선거대책위원회를 해산하면서 김종인 전 위원장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취재진에게 '윤핵관 실세설'을 겨냥, "공식적으로 ('윤핵관'은) 후퇴했지만 내부적으로 그 사람들의 영향력은 아직 존재한다"라고 각을 세웠다. 실제 선대위 후방으로 후퇴했다던 장 의원은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을 직접 주도하면서 막후 영향력을 과시했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후 장 의원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윤 대통령이 장 의원을 당선인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이다. 장 의원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은 안철수 의원과 새 정부의 밑그림을 직접 그렸다. 이 같은 상황에 이준석 대표는 불만을 갖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는 대선 당시 '윤핵관'이란 명칭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특히 장 의원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이 대표는 안철수 의원과의 단일화를 끝까지 반대했지만, 장 의원이 막후에서 주도한 단일화 협상을 저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국공신' 자리를 장 의원에게 내준 이 대표는 이후 당의 혁신을 주도하며 당권 장악력을 높여갔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이 대표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 대표를 둘러싼 '성 접대 및 증거은폐 의혹'이 불거진 탓이다. 당시 이 대표는 본인의 징계 가능성이 언급되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윤핵관 배후설'을 제기했다. 그러나 결국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6개월'이란 중징계를 내렸다. 이후 이 대표는 전국의 당원들을 만나며 재기를 모색했지만 당이 돌연 비대위 체제를 모색하면서, 복귀 기회도 무산되는 모양새다.
조기전대 시 장제원 등판 가능성은?
현재 장 의원은 침묵하고 있다. 권 원내대표의 직무대행 사퇴, 비대위 전환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당내에서는 비대위 전환 추진에 맞서 김용태, 정미경 최고위원 등 친이준석계를 중심으로 '윤핵관 2선 퇴진론'도 분출되는 모양새다. 권 원내대표의 퇴장에 맞물려 장 의원의 등판설이 흘러나오자 이를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유승민 후보를 지지했던 국민의힘 한 의원은 "어느 한 곳으로 권력이 집중되면 잡음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집권여당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대통령실에 쓴소리도 할 수 있는 지도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이 조기 전당대회를 열더라도 장 의원이 직접 출마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윤핵관' 권성동 원내대표가 퇴장하자마자 같은 '윤핵관'인 장 의원이 출사표를 던진다면, 본인이 지금까지 부인했던 '당권 욕심'이 사실로 드러나는 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 의원에 대한 '민심' 역시 좋지 못하다. 그의 아들이 음주운전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탓이다.
일각에선 장 의원이 당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이나 김기현 전 원내대표와 손잡고 총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른바 '간장 연대' 혹은 '김장 연대' 중 하나를 모색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정치권에선 장 의원의 존재감이 계속 커지는 게 침체된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여당이 새로운 지도체제로 재편해야 하지 않는 이상 (당정의 위기를 극복하기는) 힘들다. 결국 비대위 체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정부 여당이 새 비전을 발표하는 게 상식인데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며 "시간만 나면 여당이 권력 다툼을 하니 '국정 운영이 제대로 될까'라는 국민의 비난이 들불처럼 번지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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