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897년 국내 첫 철도 기공식에 상복 입은 이들..명단 찾았다
조선 시대 말인 1897년 3월 22일. 인천의 쇠뿔고개(우각현)에서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경인선의 이전 이름) 기공식이 열렸다. 이 장면이 담긴 사진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철도역사가들은 한국 철도 관련 행사를 담은 최초의 사진으로 평가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미국인 기술자 보스트윅(H. R. Bostwick)의 손녀가 2017년 5월 한국전력공사에 관련 자료를 기증하면서 실마리가 풀리게 됐다. 보스트윅은 서울에 전차노선을 부설·운영하고 경인철도 부설공사에 참여했던 미국인이다.
배은선 철도박물관장(경영학 박사)은 최근 보스트윅의 손녀가 기증한 자료 중 앞서 공개된 사진과 같은 사진의 뒤에 붙어있던 영문 사진설명을 통해 참석자 명단을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이 기공식 사진에 참석자들의 명단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배 관장은 “자료를 분석하던 중 사진 뒤에 주요 참석자의 명단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설명에 이름이나 직책이 명기된 주요 인사는 조선인 6명과 미국인 4명, 프랑스인 1명 등 모두 11명이다.
사진 설명을 보면 6번에서 11번까지가 조선인이다. 6번은 한성판윤 이채연이다. 오늘날로 치면 서울시장인 셈이다. 이채연은 한국 최초의 철도인으로 기록돼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7번은 이재정 인천부윤(현재의 인천시장)으로 나와 있다. 8~11번은 이름은 없고 직책만 적혀있다. 8번은 철도국장, 9번은 서울의 외채책임자, 10번은 한국군 지휘관, 11번은 보스트윅의 한국인 요리사 등으로 표기돼 있다.
배 관장은 “행사에 참석한 한국인 주요 인사가 모두 흰색 상복을 입고 있는 것은 1895년 10월 8일 발생한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3년간 이어진 국장(國葬)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이날 행사에 참석한 외국인은 누구일까. 사진 설명의 1~5번이 외국인이다.
사진 설명을 보면 1번은 기술자인 칼리(W.T. Carley)이며, 2번은 미국의 무역업체 타운센드의 직원 데쉴러(D.W. Desesler), 3번은 타운센드의 대표 타운센드(W.D. Townsend), 4번은 인천해관장(지금의 인천세관장)인 프랑스인 라포르트(M. Laport), 5번은 주 조선 미국공사 알렌(H.N. Allen) 등으로 나타났다.
경인철도 기공식에 조선인은 물론 외국의 주요 인물이 참석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고 배 관장은 지적했다. 보스트윅이 남긴 사진 설명에 따르면 조선의 고위관료와 미국 공사까지 참석한 이 중요한 행사에 당시 경인철도 부설권을 가진 미국인 모스(J.R. Morse)의 모습이 없다는 것이다. 배 관장은 여러 가지 사료를 바탕으로 모스가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밝혀냈다.
배 관장에 따르면 모스는 당시 일본 요코하마(橫浜)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모스는 당시 일본의 재계 유력자인 시부사와 에이이치 등을 만나 경인철도 부설권의 양도의사를 밝히고, 협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배 관장은 “(모스가)경인철도 부설허가 실효기한인 1897년 3월28일을 불과 6일 앞두고 기공식을 거행한 것”이라면서 “이는 부설권이 조선 정부에 환수될 경우 일본과의 부설권 양도협상이 무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모스는 경인철도 부설 자체보다는 부설권을 이용한 이익 창출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결국 경인철도 부설권은 1899년 초 일본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된다. 배 관장은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 궤도교통의 효시에 관한 연구-보스트윅의 자료를 중심으로>라는 보고서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
배 관장은 “125년 전 사진 한 장과 참석자 11명의 명단, 그리고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우리의 철도 등 각종 인프라를 둘러싼 이권이 외국 세력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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