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없이 크는 10살 손주 위해.. 굽은 등으로 온종일 리어카 끌어
■사랑합니다-폐지 줍는 할머니
초승달이 굴러간다. 8월의 아스팔트 위로 쇠똥구리처럼 굴러간다. 굴러야 사는 쇠똥구리 인생, 등이 휜 초승달은 이른 아침부터 쉬지 않고 굴러간다. 한낮 허기는 1000원짜리 빵 하나가 전부다. 두 개를 먹고 싶으나 빵 하나가 빈 박스 10개 값, 그래서 참아야 하는 쇠똥구리는 빵보다 더 큰 쇠똥을 굴리며 간다. 앞에서 끌다 지치면 뒤에서 밀고 간다. 언덕은 지옥이다.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보지만 오체투지의 걸음은 애 터지게 느리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굴러가는 것일까. 얼마를 더 굴러야 끝이 보일까. 등에 달라붙은 뙤약볕이 주리를 틀면 온몸은 간간한 육젓이 된다. 언제쯤 육탈의 고뇌를 넘어 단 한 번이라도 비단길을 굴러갈 수 있을까. 엎드려 뒤로 걷는 생, 갑옷처럼 딱딱한 등껍질을 메고 쇠똥구리는 오늘도 쇠똥을 굴리며 노을 진 모퉁이를 돌아간다. 길 건너 갈빗집 간판에 불이 켜진다. 가로세로 칼집 먹은 갈빗살이 불빛에 환하다.
“할머니, 오늘 많이 했네. 아이고, 이 등 좀 봐. 더 굽네 더 굽어. 이제 그만하시지… 못 보겠네.” 폐지회사 사장님은 안쓰럽다는 듯 혀를 찬다. “아녀, 민서가 짜장면 한번 배부르게 사 달리야. 어쩌겠어? 친구들은 다 다닌다는 피아노랑 영어학원도 보내줘야 하고, 이제 10살 먹은 것이 지 어매아비도 없이 이 할미 하나 보고 산께 짠해 죽것어.” “아이고 민서가 짠한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더 짠해요. 평생을 손주 타령만 하시네. 오늘 80킬로그램 했네. 여기 있어요.” 새벽부터 모은 폐지가 해질 무렵에야 1만 원짜리 한 장과 1000원짜리 일곱 장으로 가벼워졌다.
할머니는 초승달이 말갛게 떠 있는 새벽길을 또 나섭니다. 나도 오늘은 폐지 줍는 저 길에서 한 구절 생을 읽고 허투루 살아온 문법을 배우고자 따라나섭니다. “할머니, 오늘은 제가 리어카를 끌게요.” 리어카는 생각보다 튼튼하였습니다. “처음 끌면 힘들 텐데…” 하시며 걱정을 하십니다. 내가 손잡이 안으로 들어가 리어카를 끌었더니, 아직은 가벼우니 밖에서 밀고 가야 편하다고 한 수 지도를 하십니다.
무말랭이처럼 휘어진 할머니 손이 골목의 아침 공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폐지 줍는 것도 요령이 있어. 목 좋은 곳부터 다녀야 혀. 괜히 골목만 돌아다니면 죽도 못 묵어” 하시며 편의점과 큰 슈퍼를 먼저 돕니다. 그다음 원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을 휘돕니다. 불경기엔 폐지도 없다고 걱정하십니다. 한나절을 돌고서야 리어카는 제법 무거워지고 작은 언덕에도 숨이 차올랐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비닐봉지에 싸 온 김치말이 주먹밥 두 개를 주시며 좀 쉬자고 하십니다. 교회로 올라가는 계단이었습니다. 털썩 걸터앉아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아멘으로 인사를 하고 주먹밥을 먹습니다. 배는 고팠으나 주먹밥이 너무 짰습니다. 할머니는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일부러 소금 간을 했다며 배부르냐고 묻습니다. ‘네’ 하고 대답을 했으나 사실 반대였습니다. 평소 몸에 밴 일이 아니었기에 힘들고 배가 더 고팠습니다.
잠시 화장실도 갈 겸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가 본 교회는 아늑했습니다. 왜 왔느냐? 누구냐? 묻지도 않습니다.
일을 보고 나오는데 신도 한 분이 “교회 나오세요” 하며 떡을 주십니다. 그것도 시루떡 두 팩이나 주십니다. “아이고, 하나님.” 나도 몰래 외마디가 튀어나왔습니다. 믿음·소망·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신 그 말씀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떡 두 개에 교인이 돼버렸습니다. 떡 하나를 할머니에게 드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주일도 아닌디 무슨 떡이여” 하시며 잠깐 기도를 하십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손주 손을 잡고 교회에 나간다 하시며 “요즘엔 하나님께 죄를 지어. 십일조를 해야 하는디 그러질 못혀. 요즘 폐지가 워낙 똥값이라” 하시며 공손하게 하늘을 바라보십니다. 나는 깜짝 놀라 “할머니 힘드신데 쉬셔야지 교회는 왜 나가세요? 하나님이 어디 있다고요. 보이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보이면 사람이지. 하나님을 보려고 하는 그 욕심부터 버려.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만 보이는겨. 심령이 가난하다는 건 욕심을 버리고 죄를 짓지 말라는 거여. 봐, 저 폐지 위에 하나님이 졸고 계시잖여. 안 보여?” 아뿔싸, 1만 권의 책이 순식간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1만 권의 문법이 폐지로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IT개발자 김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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